올해는 유난히 바빠서 애지중지 가꾸던 옥상 하늘 정원 식물들을 많이 사랑해 주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조금 일찍 퇴근을 한 날, 모처럼 하늘 정원을 찾았다. 드문드문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이 보인다. 부추는 노란색으로 염색한 여자가 머리를 헝클어 놓은 듯하고 상추와 치는 대가 제 마음대로 자라서 씨앗이 맺혀 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가 수그러진다. 그런데 엄마한테 얻은 모종으로 심어놓은 고구마는 여름 장마의 후원을 힘입어 무성하게 무성하게 잎과 줄기를 뽐내고 있다. 안도의 숨과 더불어 사랑스럽고 대견한 고구마를 보고 있으니 몇 년 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감자를 캐고 난 자리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구마를 심으려고 번개시장 여러 난전을 지나 모종을 파는 가게 앞에 도착했다. 평소 자주 가는 곳이라 주인아주머니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고구마 싹이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늘 처음 들어왔다며 상자를 뜯어서 보여 준다. 가격을 물으니 한 단에 팔천 원이라고 한다. 작년엔 반 단에 삼천 원 주고 샀던 기억이 나서 비싸다고 했다. 그리고 옥상에 심을 면적도 좁고 하니 반 단만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며 냅다 소리를 지른다. “마순데 아침부터 재수 없는 여자가 붙어서 기분이 억수로 더럽네! 상자를 뜯었는데 다 사 가야지 이거 우짜란 말이고?” 순간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잊지를 못했다. 정신을 수습하고 생각해 보니 너무 화가 난다.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 돈으로 내가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사겠다고 하는데 아침부터 내가 왜 욕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 내가 왜 재수가 없어요? 나는 복 있는 여자니까 재수 없는 여자는 아주머니나 하세요!” 내가 여기 처음 온 것도 아니고 자주 오는 고객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섭섭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내 마음을 위로하기는커녕 인상을 쓰며 자기 입장만 계속 고집했다. 일 절만 하고 그만두었으면 나도 고이 나왔을 텐데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며 마치 구원병이라도 얻을 기세로 더욱 크게 나를 욕한다. 좋게 해결하려 했지만 너무 억울해서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졌다. “아주머니, 고객의 입장과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고 어디 장사 자알 되겠네요. 나는 복 있는 여자요. 재수 없는 여자는 당신이 뱉었으니 당신이 다시 가져 가시오!” 그리고 위풍당당하게 그 가게 앞을 나왔다. 지금은 세월이 좀 지나서 마음이 진정이 되지만 차마 잊히지 않는 날이다. 그날, 아주머니와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음이 통하지 않았다. 서로 조금씩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면 기분 상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을 날이 아주 기분 나쁜 특별한 날로 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또 배우게 되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만 한다. 매일 만나거나 가끔 만나더라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무척 답답하고 힘이 든다. 그렇다면 나와 타인이 말이 잘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마디로 진실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진실한 마음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은 긍정적인 말과 배려하는 말, 상대를 인정하는 말로 나타난다. 말이 통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못생겨도 음식을 잘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말이 통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이다. 말은 신 그 자체라고 말한 학자가 있을 정도로 언어는 중요하고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성경 잠언서에도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다. 아브라카 다브라카! 예쁘게 자라는 고구마 순을 생각하며 오늘도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과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멋진 날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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