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서 아파트 사는 심정으로 영끌해서 오디오를 구입했다. 집에 오디오 기기가 없어 그동안 시디는 트럭에 붙어 있는 카오디오로 들었는데 이번에 하나 질렀다. 배달받은 상품 박스 포장을 개봉하며 아내가 ‘씰데없는 거’ 샀다고 할까봐 잔머리 굴리던 중 마침 유니세프에서 보내준 “Love unicef" 스티커가 보여 오디오 기기 잘 보이는 상단에 살짝 붙이고 뻥을 쳤다. “유니세프에서 후원에 감사하다고 시디 재생기를 하나 보냈네... 업체 협찬품 인가봐.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고 톡을 보냈더니 아내가 “ㅎㅎ” 하며 좋아한다. ‘뻥치지 마~’ 했으면 이실직고하고 ‘싼 거 하나 샀어~’하며 너스레를 떨려고 했는데 정말로 믿으니 큭큭 웃음도 나오고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 (설마 유니세프에 확인 전화하지는 않겠지? ) 도대체 유니세프에서 오디오 기기를 왜 보내줄까 마는 남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니 농담도 함부로 못하겠다. 자수해서 광명 찾을까 어쩔까 고민하다 반백년 전 일이 떠올랐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작은 형(그 때 아마 고딩)이 레코드 음반을 자주 가져왔는데 그 때는 어머니가 6남매를 어렵게 키우던 시절이었다. 레코드판(LP)을 가지고 오면 어머니는 씰데없는 거 사왔다고 야단치셨고 작은 형은 친구한테서 빌려온 거라고 둘러댔다. 인심좋은 친구가 돌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아 레코드는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아마 어머니가 알고도 모른 척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도 알고도 모른 척하고 속으로는 큭큭 웃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옷 사는데 열정을 보이는 아내가 나에게 너그러워 지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는 옷을 사면 내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90% 세일한 거라고 선수를 친다. 원래 20만원짜린데 세일해서 2만원에 샀다 또는 원래 백화점에서 59만원짜린데 5만9000원에 건졌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옷을 삼으로서 크게 이익을 봤다는 말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나는 상당한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내가 오디오 하나 사는데 영혼까지 끌어 모아야 한다. 아내가 옷을 사는 이유는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옷은 많은데 도대체 입을 게 없다고 한다. 옷이 맞는 게 없다고 한다. 나도 요즘 똥배가 나와 바지 단추가 자주 터져 충분히 이 말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최근에 구입한 옷들도 다 핏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 핏이라는 건 패숑 전문 용어 같은데 아마 깔의 조화, 위아래 어울림, 등등을 말하는 거 같다. 먼저 산 옷이 핏이 안 맞아 이번에 90% 세일하는 걸로 하나 건졌다며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우와~ 이 걸 그 가격에 사다니 정말 운이 좋다”며 장단을 맞춘다. 아내가 진지하게 어떠냐고 어울리냐고 물어보면 항상 후하게 평가를 해준다. 솔직히 내 눈에는 그 옷이 그 옷 같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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