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중요한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광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발전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특화 관광상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관광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발맞춰 관광산업이 보다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누구나 이용 가능한 ‘무장애 관광’ 인프라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무장애 관광’이란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 등이 이동과 접근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 제약 없이 관광활동을 즐길 수 있는 관광을 말한다.)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교통약자의 접근성·이동권 개선의 필요성과 △누구나 편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국내 ‘무장애 관광’ 사례 등을 소개함으로써 또다시 찾고 싶은 함양군을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 편집자주글싣는 순서① 함양군 장애인, 무장애 여행에 대하여 ② 제주도 ‘무장애 여행’ 제도적 기반③ 제주도 휠체어로 떠나는 여행지 ④ 장애인이 엮은 무장애 대전여행⑤ 교통약자의 특성과 욕구에 맞게 구성된 경주 관광⑥ 장애인을 위한 여수세계엑스포 출발점 ⑦ 나무 데크, 완만한 경사로 ‘구포 무장애 숲길’ ⑧ 서울 무장애 관광 컨트롤 타워 “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먹고, 배설하고,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고 여행하고 싶은 모든 욕구와 권리는 비장애인에게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도 계획 없이 길을 나설 수 있어야 하고, 맛집에서 음식을 즐기고 싶기도 합니다. 채움과 비움이 자유롭고, 출발과 도착이 안전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당연한 이 조건들은 국가와 사회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마땅히 지원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구성원 개개인의 정체성을 염두에 둔 구성원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엮은 무장애 대전여행’ 들어가는 말 中 국민여행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당수의 장애인 응답자가 편의시설 부재 때문에 관광명소 등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대전지역에도 7만여 명의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약자가 42만 명이나 있어 접근 가능한 관광환경 조성과 시민들을 위한 정보제공은 매우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에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무無장애여행팀은 대전 지역 최초 무장애 여행 안내서를 발간했다. 책은 중증 여성장애인들이 2018년부터 2년여 동안 대전 지역 주요여행지를 탐방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이들은 비장애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익숙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대전 시내 14곳을 우선으로 선정해 대전 유성구, 서구, 대덕구, 중구 별로 수록했다. 직접 탐방하면서 각 여행지를 찾아가는 길, 여행지 소개, 장애인 편의시설, 주변 관광지, 음식점 및 숙박시설 등에 대한 상세 기록을 담았다. 또 체험한 현장 촬영, 여행지별 탐방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문제점이 발견된 시설에 대해서는 개선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는 사업   대전여성장애인연대(이하 여장연)는 2006년 4월 한국여성장애인연대 대전 지부로 개소했다. 대전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여장연는 대전 지역 △여성 장애인의 권익 보호와 증진 △사회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홍보 △가정폭력·성폭력 등 피해 여성장애인에 대한 상담 △자립활동 및 평생교육(검정고시, 문해 교육) △수익사업 등에 대한 지원 사업 및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로 제3대 대표를 맡게 된 유승화(55) 씨를 만나 ‘장애인이 엮은 무장애 대전여행’ 책 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승화 대표는 “대전 여성장애인연대 만의 사업이 아닌, 대전 지역에 있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적인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서 “무장애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대전 지역의 편의시설 실태를 조사하고 장애인들이 장애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대전 여장연 창립에 도움을 준 충남대학교 교수가 무장애 여행 지원에 나섰다. 대전 여장연의 고문으로 불리는 그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업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을 지원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이 제안으로 여장연은 자부담을 이용해 주요관광지의 이동접근성, 편의시설 등에 대해 직접 실태조사를 하고 정보를 담은 책을 발간하게 됐다. 사업은 단기와 중장기 과제로 나누어 연차별로 진행하기로 하고 먼저 여행지의 실태조사와 자료집 제작을 1차 적 목표로 정했다. 실태조사는 장애인들이 여행하려 할 때 가장 절실하면서도 늘 어려움을 겪는 교통수단과 여행지의 편의시설, 장애인의 접근이 가능한 여행지 주변의 식당과 숙박 장소 등을 검토 대상으로 했다. 사업의 주체는 중증장애인으로 하고 활동 지원사를 동행하는 조건으로 참여자를 모집했다. 이어 장애학과 장애인관광, 지역 문화관광, 장애인편의시설 등의 주제로 각 분야의 이론가와 경험 있는 실무자들을 강사로 초빙해 실태조사를 하기 위한 사전교육을 거쳤다. 우여곡절 무장애 여행기 여행팀은 중증장애인 4명, 경증장애인 1명으로 최종 5명이 구성됐다. 유승화 대표는 당시 사무국장으로 참여했으며 2대 대표 전혜련씨, 유금순씨, 문경희씨, 김순자씨 등이다. 무장애 여행팀의 첫 걸음은 2018년 5월 말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출발했다. 각 시설이 장애인 편의시설 규정에 맞게 설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또 무장애 여행은 장애인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여행지로의 이동은 주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했다. 이들은 무장애 여행을 주제로 장애인주차장의 위치나 면수 등 타당성 여부, 장애인화장실 내부 공간 크기가 휠체어 장애인을 수용할 수 있는지, 경사로의 경사도가 장애인이 이동하기에 적합한지 의 여부 등을 점검했다. 무장애 여행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특히 최 중증장애인은 외출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10시에 출발을 계획한다면 새벽부터 준비해야 한다. 근육 장애가 있는 경우 활동 보조가 집을 방문해야 몸을 씻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며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휠체어가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사전에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책을 발간하기까지 무장애 여행을 모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사명감’이라고 말한다. 숙원사업 해결에 보람을 “비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최대인 장애인 편의시설이 실제 장애인들에게 최소의 시설이다.” 이들의 여행지는 주로 대전 시립박물관, 대전시민천문대, 충남대학교, 예술의 전당, 동춘당 공원 등으로 공공기관 및 문화재를 방문했다. 그러나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에 문제점이 많았다. 특히 여성 장애인들의 고충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변기 ‘물내림’ 버튼이 머리 위에 위치하고 있어 앉아서 버튼을 누르기 불편하게 되어 있는 곳, 장애인 화장실 칸에 수유실이 같이 있어 휠체어가 진입할 수 없는 곳, 등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도 실제 장애인들이 사용하기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이들은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문제점을 알리고 공문을 통해 개선을 요청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시설개선 요청 공문을 올리자 신속하게 장애인 화장실을 수리하고, 강당 입구에 휠체어 리프트까지 설치했다. 뿌리 공원에는 개선요청에 따라 공원 출입구 가까이 장애인주차장을 설치했다. 대청호 물문화관은 장애인주차장 표시가 없어 불편했던 주차장에 별도로 장애인주차장을 표시했다. 특히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 고택인 대전 동춘당의 출입구는 높은 돌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에 대전의 대표적 관광 명소라는 명칭이 무색하다는 개선 건의를 수차례에 걸쳐 요청했고 1년 후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숙원 사업이 해결되는 경험을 했다. 유승화 대표는 “여행지에 조성되어 있는 편의시설에 결정적인 문제점들이 발견되면서 공문을 보내고 개선할 것을 건의했다”면서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중에 그 문제점이 개선되는 과정을 보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무장애 여행팀은 “우리의 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손상은 장애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배제가 진정한 장애다”고 말한다. 장애인 스스로가 최선을 다 해야 대전 여성장애인연대 유승화 대표는 올해 1월 대표직을 맡았다. 그의 임기는 3년이다. 그는 많은 의욕을 가지고 대표자리에 앉았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제약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대전 여성장애인연대 홍보와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책을 발간하고 북콘서트 등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반면 책을 읽은 비장애인은 ‘여성 장애인들이 화장실을 가는데 어려움이 있구나’ 라는 반응을 해 주었다. 이를 통해 한 사람에게라도 여성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으면 어디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보령시에서 태어나 3살 때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를 잃었다. 보조기를 차고 휠체어로 다니는 것은 그의 당연한 일상이다. 이후 30살이 넘어서 대학을 입학했고 공부를 위해 대전으로 오게 되어 여장연과 인연이 되었다. 유승화 대표는 “대전은 장애인 살기 좋은 도시 1등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 대전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불편함은 많이 존재하고 있다. 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대전이 이 정도이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라는 의문이 든다. 제가 처음 대전에 왔을 때보다 많은 환경적인 요인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이 진입하지 못하는 곳은 여전히 있다. 장애를 가지지 않고선 그 불편함을 절대 알 수 없다. 장애인 스스로가 불편함을 호소해야 하고 개선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회만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와 시민,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인 스스로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 스스로가 살아가면서 세상과 동떨어졌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자신이 정한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세상 탓만 하면 안 된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장애인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장애인들을 위한 당부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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