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굴비를 좋아한다. 노릇하게 잘 구운 굴비는 밥도둑이다. 그리고 굴비처럼 구부정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굴드도 좋아한다.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글렌 굴드라고 하지만 나는 한없는 애정과 존경을 담아 굴비 굴드라고 부른다. 영혼을 담아 부르는 그의 노래와 연주는 시간 도둑이다.굴드는 피아니스트이면서 지휘자다. 황금 굴비를 떠오르게 하는 그는 잘 생긴 얼굴에 감정을 실어 콧노래를 하며 왼손을 휘젓는데 피아노 한 대를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며 연주한다. 왼손 지휘자인 굴드는 취권의 대가다. 사람들이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그의 왼손에 시선을 빼앗길 때 그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건반을 타격한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심장이라도 가격당한 듯 숨을 멈출 수밖에 없다. 어제 뉴스를 보니 서울에 사는 30대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산다고 한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른다고 없는 돈에 영혼까지 끌어 모아 필사적으로 산다고 하는데, 지리산 골짝에 사는 나로서는 서울 아파트 가격을 들으면 믿어지지가 않는다. 30평 아파트가 몇 억도 아니고 십 몇 억 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야? 막걸리야? 나는 영끌해도 아파트는 못 사지만 영끌해서 굴드의 시디는 산다.지난 해 말러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집을 구입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구입하는 시디다. 집에 시디를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 기기가 없는데도 주문했다. 트럭을 운전할 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을 대부분 라디오나 스맛폰 또는 컴퓨터로 듣는 편인데 이번에 글렌 굴드의 미친 연주를 들어보려고 주문했다. 음악을 듣기위해 일부러 트럭을 탈 수는 없지만 운전을 할 때마다 굴드를 들을 수 있다 생각하니 흐뭇하다. (참고로 나는 ‘흐뭇’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자주 쓴다. 왜냐면 지난 해 출간된 내 수필집 ‘흐뭇’이 한권이라도 더 팔렸으면 해서다. 나는 내가 SNS에 포스팅한 모든 글에 예쁜 댓글이 달리면 “감사해요~ 흐뭇하네요“ 라고 답글을 단다.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다 계획이 있는 것이다.) 책이 많이 팔리면 시디 플레이어도 하나 터억 구입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하긴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부터도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보니 사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굴비 굴드 얘기하다 삼천포로 빠졌다. 미인박명이라고 굴비 굴드는 50세에 사망했다. 만일 그가 생존해서 연주를 한다면 영끌해서 비행기 타고라도 실황 연주를 한번 들어볼 텐데 유감이다. 하긴 그는 30세부터 대중 앞에 서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녹음연주만 했다고 하니 그가 살아있어도 내가 들을 수 있는 건 녹음연주다. 굴드는 바하의 지루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세상을 울렸고 그는 농담으로 골드베르크를 굴든베르크라 하기도 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도 있고 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책(“흐뭇”은 아님)도 있는데,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음악은 바하의 평균율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베토벤에 피아노 소나타다. 단 굴비 굴드 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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