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다. 엄천강에는 강물이 불어 한남교 다리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차오르고, 산에서 강으로 내려오는 도랑에도 물의 양이 상당하다. 10년을 주기로 도로까지 침수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남마을 강변 인근에 수해예방 목적의 큰 공사를 하게 된다고 하는데 공사가 되고 나면 아마도 동네의 지형이 조금은 바뀔 듯 싶다. 비가 자주 내리고 그로 인해 홍수 등으로 해마다 인명과 재산 피해를 당하는 현실을 보면 강변을 넓히고 둑을 높이는 홍수 예방 목적의 공사는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천혜의 자연경관인 강변 자갈과 모래, 그리고 바위 나무 등의 모습이 변형되고 파괴 되었을 때 혹여라도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한번 검토되고 숙고되어야 할 듯 싶다. 특히 이곳은 지리산 관문과도 같은 곳이고 귀농 귀촌하시는 분들의 첫 번째 선택 사항이었던 자연경관을 보고 오셨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를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네팔에서는 우기라고 표현한다. 네팔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산악지대가 많고 산을 개간하여 산악지대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밭이거나 농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이다. 그로 인해 우기만 되면 산사태가 나고 인명피해가 나며 산악 도로가 파괴되고 있다. 네팔에서는 아직 자연경관에 대한 보호 인식이 부족하다. 왜냐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조금의 터만 있다면 산을 개간하여 옥수수 감자 등의 농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고, 산사태나 환경 파괴 등의 나중에 올 무서운 재앙에 대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장맛비가 연일 계속된다. 그리고 사고 소식도 자주 듣게 되는데 장마철만 되면 고향 가족과 인척들이 염려된다. 나의 고향 신두팔촉은 대부분 산악지대다. 이곳 함양의 넓은 농경지는 그곳에서는 구경할 수 없다. 나의 고향 마을은 하얀 설산으로 둘러쳐진 히말라야가 저 멀리 눈앞에 보이는 해발 2000미터 고지대인데 농사라고 해봐야 감자, 옥수수 등의 밭작물이 대부분이다. 집집마다 염소와 닭을 몇 마리 키우는 정도이고, 간혹 논갈이를 위한 소를 가진 농가도 있다. 벼농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하면 도보로 2~3시간 거리의 산 아랫마을에 가져다주고, 쌀로 바꿔오는 물물교환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요즘은 물물교환보다는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판매하고, 그 돈으로 쌀을 사 온다고 한다. 또한 예전에는 걸어서 다니는 게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오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기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낮에는 그쳤다가도 밤만 되면 비가 내리기 때문에 산길이 상당히 미끄럽고 위험하여 가끔은 버스 통째로 천길 낭떠러지에 굴러 사고가 나기도 한다고 한다. 마을이 형성되고, 버스도 마을까지 들어오고, 그리고 사람도 모여사는 고향마을. 몇 년 전 네팔 대지진으로 산악지대에는 단 한 채의 집도 남지 않게 됐는데 지금은 정부 지원 등으로 조금은 안전한 장소에 마을 형태의 여러 채 집을 새로 지어 이웃과 가까운 거리에서 재미있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 오기 전, 아니 네팔 대지진이 있기 전만 해도 이웃집이라고는 시야에 4~5가구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바로 옆집에 가려고 해도 20분은 족히 걸어가야 할 만큼 서로 간에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왕래는 잠시의 인사가 아닌 하루 일과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요즘은 10가구 안팎이 모여 사는 마을 형태가 되었다니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한국에서의 삶이 모든 면에서 풍족하다고는 하나 훈훈한 인심 가득하고 유년의 추억이 넘치는 네팔 고향 산골 마을의 그리움만큼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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