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바지에 장화 신고 머리도 깔끔하게 감싸고 앞치마 단단히 홀쳐매고 들어와야지” 주방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복장을 보면 마음자세를 알 수 있다. 18세 때부터 식당보조로 일하며 ‘최고의 요리사’를 꿈꿨다는 이명자(63세)씨의 말이다. 함양군 마천면 추성 벽송사 골짜기에서 태어난 이명자씨는 열여덟 되던 해 함양읍에 있는 유명한 한정식집에서 일을 했다. 연탄 가는 것부터 궂은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정갈하게 차려져 나오는 한상 음식을 보면 직접 요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길은 그녀에게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결혼 후 김해에서 정착하게 된 이명자씨는 어린 시절 보기만 했지 직접 만들어 본 적 없는 음식이 자꾸 생각났다. 요리가 너무 하고 싶었던 그녀는 유명한 음식점을 다니며 주방보조로 일하면서 음식을 배웠다. 요리를 잘 가르쳐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비법이 들어간 소스는 새벽이나 밤중에 만들어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씩, 하나씩 요리를 터득해 결국 주방찬모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개업을 앞 둔 식당에 자신의 요리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식당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방찬모로 활약했다. “식당을 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됐으니 다른 사람이라도 잘 되게 해 주고 싶었죠. 내가 하라고 한 대로 잘 따랐던 식당은 모두 성공했죠. 그 인연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주방찬모 면접을 40명이나 보고 나를 선택했다는 곳도 있었다니까요” 그녀에게 요리는 꿈이자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또는 ‘예쁨’이란 한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요리사도 예쁜 옷을 입어야 해요. 재료도 예뻐야 맛있고 음식도 예쁜 그릇에 담아야 하죠” 이미 요리 플레이팅의 중요성을 알았던 그녀의 말이다. 취재를 갔던 이날 그녀는 심혈을 기울여 가장 요리사다운 옷을 골라 입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실 취재진은 된장콩잎장아찌를 맛있게 담는 귀농인이 있다는 소문에 이곳을 찾았다. 만나보니 그녀는 장아찌 담는 귀농인이 아니라 ‘여자 백종원’이었던 것. 이명자씨는 도시생활을 접고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 고향으로 들어온 지 8년째다. 남편이 손수 지은 집에는 꽃과 나무가 가득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테이블, 씽크대, 의자, 화분까지 주문만 하면 나무로 만들어주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아들, 딸 네 식구 발이 서로 부딪히는 좁은 단칸방에서도 살았는데 그 시절 우리 가족이 참 행복했다고 말해 준 아이들이 고마워요. 남매 결혼시키고 손주도 키워주고 나니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죠” 최고의 요리사를 꿈꿨던 이명자씨는 고향에 돌아와 자신이 만든 음식을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손님을 초대하여 내 놓고 맛있다고 하니 더 해서 택배로 보냈다. 그 중에 된장콩잎장아찌는 인기폭발이었다. 지인의 지인에 꼬리를 물며 주문이 들어왔다. 콩잎은 이슬이 있을 때 따야하니 새벽에 밭으로 향했다. 예쁜 콩잎만 골라서 따고 절이고 된장양념을 버무려 장아찌를 담는다. “콩잎된장은 조선된장을 넣어야 짜지 않고 깔끔한 맛이 나요. 단맛은 조청으로 내고 5~6년 가량 오래된 간장을 써요” 직접 알려주는 비법이지만 직접 하겠다는 엄두는 나지 않고 그녀의 콩잎된장장아찌에 자꾸 손이 갈 뿐이다. 콩을 직접 재배해 잎으로는 장아찌를 만들고 콩으로는 청국장을 만든다. 굵은 콩을 써야 청국장이 부드럽다. 아래채 황토방에서 불을 때 콩을 직접 띄운다. 청국장이 맛있으려면 온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녀에게는 그녀만 아는 온도가 있다. 청국장은 가을에 담지만 벌써 예약 주문이 들어와 있다. 국 하나를 끓여도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다는 이명자씨는 “사람이 먹는 건 제대로 만들어야 해요. 제대로 만들려면 일이 많아야 하구요. 나는 일이 많은 게 좋아요” ‘내 손에서 이 정도’ 아무리 설명해도 따라할 방법이 없는 그녀의 음식 맛은 그녀의 손끝에 답이 있다. 예쁜 옷도, 신발도 많다는 그녀, 다 가졌는데 못 가진 것 두 가지로 놋그릇 세트와 책에 나오는 유명한 장독. 장사익의 찔레꽃을 들으며 봄이면 집을 비우고 산으로 들로 자연에 푹 빠져 살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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