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함양상림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주민들에게는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상림의 숲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겨 찾는 휴식과 놀이의 자연 공간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숲 그 자체가 훌륭한 놀이터였다.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등 숲에 사는 곤충들을 예사롭게 보아왔고, 만지고 놀았으며, 다람쥐를 쫓았다. 여름날 위천에 모여 수영하고, 물고기를 잡고, 빈터에서는 공도 차고, 공기놀이도 하였다. 가을이면 낙엽더미 속에서 뒹굴고, 토실토실 잘 익은 도토리를 줍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덮인 숲에서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눈싸움도 즐겼다. 천년숲의 전설과 오랜 역사는 뛰노는 가슴에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40~50년 전 함양 주민들의 추억이다. 상림의 숲은 주민들의 어린 시절 가슴 속에 따스한 추억으로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유년시절의 숲은 빛바랜 그림 같은 추억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게 마련이다. 우리 마을숲은 농경 생활의 전통이 온통 배어있는 넉넉한 품이다. 주민들과 공감을 이어 온 고향의 언어이다. 오랜 숨결이 새겨진 지역의 역사이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에 밀려 사라지고 잊혀졌다. 그뿐이 아니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는 우리의 마을숲을 공원이라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또 그렇게 따라 부른다. 공공 행정의 영향력은 크다. 한때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알려진 시가 생각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럽게 하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공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위키백과를 들추어 보았다. “공원(公園)은 대중에게 개방되어 시민이 산책이나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공원이라는 개념은 일제강점기에 서양에서 들어왔다. 1900년 초 독립공원이나 탑골공원이 우리나라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공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라고 한다. 이 낯선 개념은 100년 만에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원은 도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서양 공원의 시작은 왕실의 사원과 수렵원에서 찾을 수 있다. 왕실과 귀족이 사용하던 방대한 정원의 숲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한 것이다. 이런 예는 영국의 제임스 파크, 하이드 파크, 켄싱턴 가든, 프랑스의 볼로뉴 숲, 베르사유 숲, 독일의 티엘 가르텐 등이 있다. 자연스러웠던 숲은 점점 도심을 중심으로 하는 인공의 자연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전 세계 공원의 효시가 된 뉴욕 센트럴파크(1853)는 처음부터 공원으로 설계되었다. 우리 마을숲의 개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지리적, 사회적, 시대적으로 여러 요소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공원은 도시민의 안녕과 휴식을 위한 훌륭한 생활공간이 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그 규모에 걸맞는 공원이 필요하다. 도시와 공원은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놓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도시민이 쉴 수 있어 심신이 이완되고 조금 더 건강해진다. 숲은 인류의 생존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우리의 마을숲과 공원이 다른 배경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우리 마을숲은 다양한 가치들이 마을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복합 생활문화 공간이다. 마을공동체 단위의 놀이와 휴식이 이루어진다. 사전적 의미의 공원 기능도 하고 있다. 그러나 새해 초나 정월 대보름에는 하늘에 제의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같은 공간이지만 때에 따라 용도를 달리한다. 성(聖)과 속(俗)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마을숲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여기에는 자연과 동화되는 우리의 고운 심성과 오랜 철학이 깃들어 있다. 모든 것이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원형적 사고에 바탕을 둔 일원론적 자연관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만물에 신이 존재한다는 인식으로 자연을 닮은 생활 신앙을 실천하였다. 하지만 서양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직선적 사고에 바탕을 둔 이원론적 자연관을 갖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장제신전, 그리스의 성림, 이탈리아 로마의 디아나숲 등은 신전 주위에 나무를 심어 그 자체로 신성한 숲이 되었다. 이러한 숲은 생활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제의의 공간이다. 정감이 넘치는 우리의 마을숲과는 확실히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신성한 구역인 소도(蘇塗)와 비슷한 개념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 있다. 신전(神殿)은 생활과 철저하게 분리된다. 제의를 올릴 때는 신전을 찾고, 신앙활동은 예배당을 찾는다. 그 외는 모두 생활공간이다. 성과 속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자연은 그저 이용 대상이 된다. 이러한 사고에서 비롯된 서구의 물질문명이 21세기를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자연환경이 우리 생존의 바로미터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려주었다. 이제 우리는 ‘자연과 우리’가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라는 걸 알고 있다. 자연을 훼손하기만 하면 우리도 아프고 병든다. 우리가 사는 물질계에 무한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없다. 쓴 만큼 반드시 채워주어야 한다. 함양상림은 지금 공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아가 휴양과 치유의 역할마저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숲이라는 전통의 가치도 살려 나가면서 시대의 역할을 숲에 맡겨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근본도 잊은 채 그저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자연문화유산을 스스로 몰아내는 일이다. 나무 인문학자 강판권 교수는 저서 [숲과 상상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조성된 상림은 신라 시대 함양 백성의 고통과 염원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러니 상림의 조성 과정을 이해한다면 이곳을 단순한 공원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상림은 함양을 대표하는 ‘상림공원’이 되어버린 듯한 모양새다.”이러한 인식과 관리 속에서 천년숲의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은 위태롭게 서 있다. 상림의 숲과 함께 살아가는 주민이 눈을 떠야 한다. 올바른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천년숲의 가치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천년의 숲이 다시 천년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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