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중요한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광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발전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특화 관광상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관광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발맞춰 관광산업이 보다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누구나 이용 가능한 ‘무장애 관광’ 인프라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무장애 관광’이란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 등이 이동과 접근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 제약 없이 관광활동을 즐길 수 있는 관광을 말한다.)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교통약자의 접근성·이동권 개선의 필요성과 △누구나 편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국내 ‘무장애 관광’ 사례 등을 소개함으로써 또다시 찾고 싶은 함양군을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① 함양군 장애인, 무장애 여행에 대하여 ② 제주도 ‘무장애 여행’ 제도적 기반③ 제주도 휠체어로 떠나는 여행지 ④ 장애인이 엮은 무장애 대전여행 ⑤ 교통약자의 특성과 욕구에 맞게 구성된 경주 관광⑥ 장애인을 위한 여수세계엑스포 출발점 ⑦ 나무 데크, 완만한 경사로 ‘구포 무장애 숲길’ ⑧ 서울 무장애 관광 컨트롤 타워 장애인 장벽 없는, 모두를 위한 함양을 위해 어느덧 여름 휴가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저마다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리는 바다 보기, 나무가 울창한 숲길 걷기, 텐트를 치고 캠핑하기, 맛집과 카페 찾아가기 등. 이처럼 생각만 해도 행복함과 설렘의 감정으로 가득할 것 같은 ‘힐링 여행’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이동과 편의시설 불편 등의 이유로 지레 포기하는 장애인·노약자 등이 많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애인 등록 현황(2018년)을 보면 함양군에는 3784명의 장애인이 산다. 같은 해 (2018년 12월) 기준 함양군 전체 인구 4만 119명 가운데 9.4%가 장애인 인구이다. 장애인 비율이 함양군 전체 인구 대비 10%에 가까운 수치인데도 왜인지 거리에서 장애인을 마주한 적이 별로 없다. 장애인도 여행을 꿈꾼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6월26일 경남지체장애인협회 함양군지회(회장 정상목)를 통해 휠체어 택시 동행과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탁 트인 바다 한 번 보고싶어요.” 함양군 함양읍에 거주하는 중증 지체장애인 노준환(61)씨도 여행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있다. 그도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이 들 때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서 쉽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거리의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계단을 마주하면 멀리 돌아가야 하고, 가고 싶은 식당이 있어도 문턱이 있으면 들어가기가 어렵다. 장애인이나 보행 약자의 이동은 그야말로 난관의 연속이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이다. 지곡면에서 태어난 노준환씨는 어릴 적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주로 휠체어나 전동 스쿠터에 의지해 생활한다. 노준환씨는 ‘지리산 함양 국수’를 생산하는 함양 장애인 보호작업장(이하 보호작업장)에 일을 나간다. 오전 8시 30분 출근, 오후 4시 10분이 퇴근 시간이다. 직장 이외의 외출은 주로 병원 물리치료, 마트, 장애인 목욕탕에 가는 일 등이다. 하루 24시간 모두가 똑같이 주어진 시간인데도 노씨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고 한다.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보호작업장은 6개월 간 휴업을 했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지루함을 느꼈다. 반면,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노씨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살면서 여행을 한 번도 안가 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교회나 직장, 단체 등에서 거제도, 제주도, 춘천 등의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 탓에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갈 수 있는 여행은 포기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한 곳까지 관광했고, 가지 못하는 길에서는 혼자 멈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 몸이지만 노준환씨에게는 단순한 ‘여행’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기쁨이다. 취재진이 그에게 제주도 여행이 어땠냐고 묻자, 비가 많이 오는 날씨 탓에 제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하면서 “군수님께 제주도 여행 한 번 보내달라고 써주세요”라는 농담 섞인 희망 사항을 전했다. 또 노준환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집에서 직장까지 갈 수 있는 케이블카”라고 말하며 웃었다. 함양군 장애인들의 이동 수단 노씨를 포함해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함양군 휠체어 택시를 이용해 외출을 한다. 휠체어 택시는 함양군 내에서만 이동이 가능하며 주로 장애인들이 병원, 직장 등을 오간다. 경남지체장애인협회 함양군지회에서 위탁 운영하는 휠체어 택시는 함양군에서 총 3대를 보유하고 있다. 휠체어택시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휠체어 탑승 장치가 설치된 차량으로 군내 230여 명의 지체장애인들이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하루 평균 1대 당 10회 이상 운행을 한다고 한다. 이용대상은 장애 정도가 심한 보행상 장애인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사람, 65세 이상 보행이 어려운 노약자, 일시적 휠체어 이용자 등이다. 이날 운전대를 잡은 장영성(48) 주임은 휠체어 택시 운행의 총괄을 맡고 있다. 베테랑 운전으로 11년차 무사고이다. 매일 휠체어 택시를 이용을 하는 장애인들과 마주하다 보니 이제는 가족 같은 관계다. 장영성 주임은 “함양 지역의 장애인분들이 대부분 고령화되어 자식같이 생각해 주고 늘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면서 “저 또한 가족이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운행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을 대할 땐 가족과 같은 마음이다. 몸이 아프신 분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이기 때문에 운전에는 배로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장씨는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은 안전장치를 해 놓아도 작은 접촉 사고 시 큰 상해를 입을 수 있다”면서 “항상 방어운전을 하면서 뒷자리를 확인하고 장애인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말했다. 장애를 특별함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 경남지체장애인협회 함양군지회에서는 휠체어 택시 운행으로 이동권을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함양군 장애인 관련 사업 대부분을 도맡아 오고 있다.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장애인 결혼식, 중증장애인 리프팅 체험 등 문화 행사 지원, 보행환경 조사 업무대행 등이다. 지난해 함양군 장애인 부부 10쌍과 함께 강원도 춘천으로 무장애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관광공 사의 지원으로 함양군 장애인 협회에서 무장애 여행을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엔 장애인 들을 설득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경남지체장애인협회 함양군지회 김민곤 팀장은 “장애인들이 여행을 떠났다가 도리어 불편함을 겪고,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몇 번이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춘천으로 무장애 여행을 한 번 다녀오고 나니, 다녀오신 분들은 다음에 또 이런 여행이 있으면 같이 데려가 달라고 말을 한다” 어려운 설득 끝에 여행을 떠난 장애인들은 큰 만족감을 느끼고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여행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집에 나선 순간부터 어려움에 부딪히기 때문에 주저한다”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비장애인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장애인 스스로가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이 편해야 모든 사람이 편하다 장애는 틀린 것도, 다른 것도 아니다.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또 장애인이 편해야 모든 사람이 편한 사회가 된다. ‘무장애 여행’ 환경 조성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고, 장애인의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함양군에도 ‘상림공원’이 지난 2018년 열린 관광지 공모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열린 관광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무장애 관광지 확대를 목적으로 지난 2015년부터 추진해 온 정책이다. ‘열린 관광지’공모사업은 ‘무장애 여행’과 비슷한 의미로 장애인과 고령자, 영유아 동반 가족 등 관광 취약계층이 이동의 제약 없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기존의 관광지를 개·보수하고 있다. 군은 상림공원 내에 장애인 화장실 리모델링, 장애인 동선 개선작업,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가이드 북을 제작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원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며 정부가 자랑하는 ‘열린 관광지’를 믿고 상림공원을 찾았다가 장애에 대한 이해와 시설이 부족한 탓에 낭패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울퉁불퉁한 바닥, 문턱, 보행도로에 휠체어가 지나가기 어려운 전봇대와 표지판 등.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식당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함양군은 상림공원뿐만 아니라 공원으로 가는 길, 함양군 시가지 보행도로 등에 대한 보행환경의 결함을 모니터링하고 ‘열린 관광지’에 걸맞은 철저한 정비가 필요하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내다보니 국내 휴양지나 생활 속 거리두기에 신경 쓴 여름 휴가를 계획한다고 한다. 때문에 야외 관광지, 자연 휴양림, 자체 입장객 수 제한을 통해 거리두기 여행을 실천하는 관광지 등이 올 여름 휴가철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함양산삼항노화 엑스포는 1년 연기되었지만 함양군은 이를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열린 관광지’, ‘무장애 여행’ 등 누구나 올 수 있는 함양 관광 인프라 구축하고, 또 다시 찾고 싶은 함양을 만드는데 주력할 것을 제시해 본다.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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