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걱정이 없을 수 있을까?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걱정이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걱정을 가지고 살아갈까? 걱정을 많이 한다고 어떤 일이 걱정 한 만큼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고 모른 척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걱정을 하고 사는지 손가락을 접어가며 하나씩 짚어본다.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지? 오늘은 뭘 하지? 고향의 부모님은 잘 계시나? 이런 걱정에서부터 수많은 삶의 걱정은 언제나 따라다니는 것 같다. 예전에 남편에게 들은 ‘새옹지마’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에 새옹이라는 노인이 기르던 말 한 마리가 집을 나가 걱정을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간 말이 짝을 하나 데리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타던 아들이 다리를 다쳐 또 낙심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터졌지만 아들은 다리를 다쳐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였다는 이야기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의 새옹지마. 새겨보면 지나친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일게다. 그런데도 걱정이 생기면 걱정을 하게 되고, 또 전화위복이 되어 좋게 되면 기쁜 게 사람인가보다. 그런데 성격에 따라 또 경험과 지식에 따라 그 정도가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은 참 별것도 아닌 게 걱정일 때가 있는 듯싶다. 하긴 아이들 시선으로 바라보면 큰 걱정일 수 있다. 남편을 바라보면 걱정이 있는 사람인지 도무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남편의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잘살고 싶거나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욕심은 많은 듯 보이는데도 도무지 먹고 살 문제나 부자가 될 문제 등에 악착같은 뭔가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 때가 많다. 자신 일이 아닌 곳에 관심이 많고, 남의 일에 시간을 너무 할애한다. 한번 생각해보면 만약 저 노력과 머리로 부자가 되려 한다면 부자도 될듯도 싶은데 타고난 성격인가 싶을 때가 많다. 고향의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시고, 사는 환경이 열악하여 항상 걱정이다. 예전의 지진 피해로 시골의 살던 집은 무너지고 지금은 도시로 이사와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데 매달 들어가는 집세며 생활비가 만만치가 않은가보다. 예전의 자급자족하던 농부의 삶은 부모님에게는 이젠 옛이야기가 되었고, 한국에서 보내 드리는 생활비로 삶을 지탱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풍족하게 자주 도와 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매번 걱정이다. 다행히 남동생이 한국에서 돈을 벌고, 부모님께 일정 부분 도와 드리고는 있는데 남동생도 평생 한국에 살지는 못할 것은 뻔한 이치이니 이래저래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걱정이란 주제로 글을 쓰면서 본의 아니게 나의 걱정 이야기만 한 듯싶다. 누구에게나 걱정은 있을 것이고, 걱정이 많은 분들게 위로 차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글을 읽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싶어 이 또한 걱정이 되고 만다. 걱정은 전염이 되고 행복도 전염이 된다고 하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과연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마음속에 두고 속앓이를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더불어 나누는 게 좋다고 하니 가까이 지내시는 분들끼리는 작은 걱정은 나누시고 조금씩 덤을 들어 드리면 어떨까 싶다.그러다 우연히 새옹지마처럼 좋은 일이 생기면 좋은일도 나누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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