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정착한 슈뢰딩거는 1943년 트리니티 대학에 부임하면서 대중들을 상대로 3번의 강연을 펼쳤다. 슈뢰딩거는 1926년 자신의 이름이 붙은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유도한 물리학자로 이미 193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낯선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강연을 통해 무언가 물리학의 영역에 새로운 결과나 구상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강연의 제목은 의외였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였다. 생물학에 대한 연구 경험도 없던 물리학자가 뜬금없이 생명을 이야기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강연을 했고 난해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인파가 매번 자리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강연은 1년 후 책으로 출간되어 나왔다. 그 제목 역시 『생명이란 무엇인가』였다. 이 책은 현대 생물학의 크나큰 진전이라 할 수 있는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 나선구조 규명이 있기 10년 전에 출간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생물학을 선택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20세기 생물학에 큰 영향을 끼친 바이블로 남아 있다. 실제로 DNA 구조를 밝힌 프란시스 크릭은 원래 물리학자였는데 이 책 덕택으로 생물학으로 전향하여 노벨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럼 슈뢰딩거는 이 강연과 책에서 물리학자로서 생명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필자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은 ‘비주기적 결정’과 같은 것이라고 한 점이다. 모든 물질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물리학은 원자가 주기적으로 배열된 물질에 관해서는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나 실리콘 결정 같은 물질이 해당된다. 그러나 슈뢰딩거에 의하면 이처럼 규칙적이고 단순한 질서를 갖춘 물질들은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나 지루할 뿐이라고 한다. 그림에 비유한다면 규칙적인 주기로 반복되는 단순한 벽지의 패턴 같은 것이다. 반면 비주기적 결정은 원자들이 따분하게 반복되지 않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위대한 거장이 만든 섬세하고 조화롭고 의미 있는 벽화장식 같은 것이라고 슈뢰딩거는 말했다. 이것은 기존의 물리학이 아닌 자신이 주요한 기여를 했던 양자역학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슈뢰딩거는 생물학자가 아니기에 생명이 작동하는 미시적인 원리를 가지고 생명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포의 분열이나 단백질 합성과 같은 미시적인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도 생명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활동이지만 생명 그 자체에 대한 포괄적인 통찰을 갖기에는 부족하다. 나무 보다는 숲을 봄으로써 이후의 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반복되는 패턴 보다는 많은 상징과 연관 관계와 스토리가 들어있는 위대한 화가의 그림에 감동받는다. 슈뢰딩거의 이와 같은 통찰은 훗날 ‘복잡계 (complex system) 과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관점의 과학을 탄생시키는데 작은 씨앗이 되었다. 복잡계란 ‘함께 엮여서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질서가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 시스템은 질서가 전혀 없는 혼돈 상태와 완전한 질서를 갖춘 상태 사이의 좁은 영역에 속해 있다. 자칫 잘못하면 혼돈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또 모든 것이 멈춰서며 반대편의 완전한 질서로 고정되어 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다이내믹한 운동성을 유지하는 매우 극적인 영역이다. 이곳에 생명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현상에 대한 미시적인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인류에게 큰 지식을 선사하는 과학자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불확실한 혼돈의 시대에 진정 필요한 과학자는 어떤 중요한 현상에 대해 전문화되지 않은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통찰력 있는 그림을 제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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