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서원’ 9곳이 전 세계인의 축하 속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로 등재됐다. 그 중 경남에서 유일하게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함양 남계서원’이다.이번 세계문화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함양 남계서원을 포함해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총 9곳으로 구성된다.이들 세계문화 유산은 등재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유산 등재와 동시에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한 과제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한국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의미와 가치를 기록하고 향후 보존 및 활용 등에 대한 과제를 풀어보고자 한다.또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네스코에 등재되기까지의 과정과 현주소를 알아보고 문화재청 관계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함양 남계서원의 지속 가능한 미래 비전 방안을 제시한다. / 편집자주<글 싣는 순서>①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등재 현주소② 경북지역 서원 활용 사례③ 우리고장 서원 활용 방안 모색④ 함양 남계서원 미래 비전 제시필암서원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고장 서원‘한국의 서원’ 9곳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필암서원’의 전남 장성군과 ‘남계서원’의 경남 함양군은 인구가 4만여 선인 군 단위 지자체이다. 장성군은 시 단위보다 비교적 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농촌 지역이라는데 있어 함양군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장성군청 관계자와 필암서원 관계자를 통해 ‘한국의 서원’에 대한 활용 방안 등을 확인하고 함양 남계서원의 활용 방안을 모색한다.장성군과 필암서원 전라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장성군은 1읍 10면의 행정구역 구성에 4만 5000여 명의 인구 규모를 가진 지자체다. 세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선비정신이 살아 숨쉬는 땅이라 소개하고 있는 장성군은 흥성대원군이 호남을 평하는 가운데 ‘호남팔불여’를 말하면서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하여 “학문으로는 장성만한 곳이 없다”라고 언급한 지역이다.학문과 선비의 고장답게 곳곳에 필암서원, 고산서원, 봉산서원 등 서원과 사우가 많다.특히, 황룡면 필암리에 자리 잡은 필암서원은 호남 지방의 유종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장성 사람들의 꼿꼿한 기질과 은근한 자존심의 바탕이 되어 온다.도학, 절의, 문장에 모두 탁월한 김인후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흥성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은 유서 깊은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교육과 배향이라는 서원의 기능에 따라 지은 곳으로 공부하는 곳을 앞에 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을 뒤에 자리하게 한 ‘전학후묘’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또한, 보물·문화재로 지정된 목판, 문서 등 조선시대 서원 운영과 선비교육에 관한 중요한 기록·사료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2019년 7월 전국 9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앞서 밝힌 것처럼 1590년(선조 23)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전쟁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24년(인조 2) 다시 세웠다. 김인후는 퇴계 이황과 함께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으로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인종이 죽고 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다시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배우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평생을 지냈다. 유생들의 소청으로 1662년(현종 3)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고 1672년(현종 13)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어 1786년 양자징을 추가 배향했다. 서원의 주요 시설물로 필암서원의 사우로, 북쪽에 하서 김인후 선생, 동쪽에 고암 양자징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우동사(祐東祠)가 있다.우동사는 4칸 반 9평으로 편액은 주자의 글씨를 집자(集字) 했다. 문루를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의 단층 기와집 강당인 청절당(淸節堂)이 보이는데, 이 건물에는 9칸 대청과 좌우 3칸의 협실이 있고, 대청에는 동춘 송준길의 편액이 있으며, 처마 밑에는 병계 윤봉구의 글씨로 사액된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는 편액이 있다.  경장각에는 조선 12대 왕이었던 인종이 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김인후에게 그려 하사한 <묵죽도> 목판이 보관 중이었으나 도난당했으며, 이후 목판화를 참고하여 다시 제작한 목판은 국립광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확연루는 필암서원 입구의 문루(門樓)로 서원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진리 추구의 엄정함으로 압도할 뿐만 아니라 네 귀퉁이에 조각된 귀공포는 엄숙하면서도 고졸한 마을 풍긴다.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며 2층 18간 13평의 구조를 갖고 있다.필암서원 운영 구조와 활용 현황현재 필암서원은 원장을 비롯해 원이, 유림장의, 유림색장, 강수재 강장, 별유사 등의 임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원장은 경향을 구별하지 않고 지위가 높고 덕망이 훌륭한 자로 천망한다. 임기는 없다. 필암서원지에는 초대원장 동춘당 송준길(1606~1672)부터 한말에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민병승(1866~?)의 이름이 기록된 원장선생안이 보존되어 있다. 원이는 부원장 격으로 서울에서 지위가 높고 덕망이 훌륭한 사람으로 천망한다. 임기는 원장과 마찬가지로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 전신장의 도장의 혹은 장의 대표를 말하며 필암서원 무서 집 강안에는 초대부터 조선말까지의 장의 색장의 명부가 남아 있다.유림장의는 관내의 유림을 대표하는 장의로 도군내에서 문행이나 신망 있는 자 가운데 천망하고 동서재에 입재해 공부하는 유림을 대표하며 임기는 1년이며 실적이 우수하면 연임한다.유림색장은 유림 가운데 문행과 신망이 있으며 서원 인근에 거주하는 자 가운데 천망한다.강수재 강성은 서원 유생들에게 강습을 하는 강사 가운데 대표자를 말하는데 훈장과 같이 사용된다.향사일은 음력 2월, 8월 중정일(中丁日)이며 제향 전날 제관들이 모여서 강학을 한다. 제향 후에는 하서 김인후에 대한 강의도 진행한다. 제향 시기 외 교육 기능으로 청소년 약 3~40명을 대상으로 한 백일장, 서원과 관련된 강의, 문화 탐방, 선비 체험 등이 있으며 주로 봄과 가을에 진행한다. 필암서원 김성수 부도유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인 실사단 평가에서 필암서원은 우수 점수를 받았다”며 “서원 고유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점과 강학과 제향이 가장 조화를 잘 이루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원 체계로는 지자체 청소년 교육 관련 지원 그리고 동아일보 신문사에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부분을 협조하고 있다. 이외에 하서 연구재단이나 산앙회에서도 학술 발표회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앞으로 예정된 유네스코 1주년 축전 행사로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 선생과 관련된 유물 전시전을 계획하고 있다. 문화원과 협력하에 시연회 프로그램 또한 준비하고 있다.장선군청 류현성 문화관광과 계장은 “그동안 필암서원은 서원 향교 활용사업 프로그램, 백일장, 선비학당, 공무원 교육, 사회단체 초정 등 제향과 교육 기능으로 활용해 장성군의 인지도를 높이는 사업을 해왔다”며 “서원 주변 둘레길과 청렴의 길 등을 잘 조성해 각 주민들을 서원과 연결하는 방식 또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서원을 더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내년에 종합 정비 계획을 준비 중에 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군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검토해 마스터플랜을 완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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