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21세기는 이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생겨난 모순과 폐해로 국민과 국토가 몸살을 앓는 비극의 시대로 보고 싶다. 최소한의 인권마저 실종된 산업 현장에서 죽어간 황유미씨 등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한 외주업체 직원 김군, 최근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등이 떠오른다. 이 비극들은 거대 시스템을 돌리기 과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닌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물로 간주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또한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미투(me too)’운동이 촉발되면서 권력층을 중심으로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했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이주민들이나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역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오랜 가부장적 전통과 자본주의가 결합하면서 생긴 노동자와 여성, 소수자에 대한 이러한 억압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여기에 또 하나 궤를 같이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 의한 자연 억압이다. 특히 21세기에만 해도 우리 사회는 여러 차례 국토를 파헤치며 억압했다. 2003년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로 기억이 생생한 새만금 간척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생명의 보고인 새만금 갯벌을 일순간에 지도에서 지워버렸고 수많은 생명들을 사라지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갯벌을 가치를 소리 높여 외쳤지만 정치 경제적 논리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어서 이명박 정권은 생태적 사업과는 거리가 먼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을 경험으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제시했다. 도저히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형을 고려할 때 대운하는 전혀 얼토당토한 일임에도 일부 정치권과 언론, 학계에서는 이 주장을 홍보하기에 바빴다. 대운하 사업이 반대에 부딪혀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슬그머니 이름을 바꿔 ‘사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이 역시 삼척동자라면 다 알 수 있는 ‘고인 물은 썩는다’는 진리를 무시한 어이없는 구상이었는데 그게 결국 현실이 되어 버렸다. 사대강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정권의 핵심 인물들뿐만 아니라 정권의 나팔수였던 언론도 큰 역할을 했다. 이제는 일상처럼 되어버린 왜곡보도, 가짜뉴스 등이 넘쳐났고 공사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었다고 본다. 그들은 연일 언론 매체에 등장해 사업의 타당성을 떠들기에 바빴고 이에 저항하며 반대논리를 폈던 학자들의 주장은 묻혔다. 그들은 강물이 썩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여전히 사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용감함’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 큰 문제가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원전의 위험은 1980년대 소련 체르노빌 사고와 2011년 후쿠시마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음에도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원전 밀집도는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고리 원전 주변 반경 30km 안에 무려 38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야말로 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현 정부 들어 탈핵 정책으로 아쉬운 대로 조금씩 위험에서 벗어날 것이란 기대는 가지게 되었지만 다수의 핵과학자와 관련 사업자, 보수 정치권과 언론이 뭉쳐 저항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실 왜곡으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원전이 없어지면 전기료가 3배 이상 인상된다는 한 교수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한 인터넷 언론이 생생하게 밝혀냈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산업화를 통한 경제적 논리만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국토가 썩어나가고 원전 사고로 전 국토가 오염된다면 우리는 모두 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위험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과학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여전히 힘을 가진 자본의 논리에 맞서 정확하고 합리적인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위기에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억압으로 신음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해소를 위해 실천하는 과학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현재의 바이러스와 같이 앞으로 우리가 닥칠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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