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해결해 보려고 카드사 홈페이지를 두드리다 포기하고 읍사무소를 찾았다. 생각보다 간편한 절차를 통해 “정부긴급재난지원금”이라고 선명하게 인쇄된 하얀 카드 2장을 받으니 국가로 부터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공짜 돈을 쓰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20만 원짜리 만큼은 용처를 정해 두었는데 “기부했다”는 어르신 말씀을 듣고나서 두 장 모두 아내에게 헌납했다. 2016년 6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스위스에서 정부가 모든 성인에게 무조건, 개별적이고 정기적으로 매달 300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되었다. 재원마련을 우려한 국민의 77%가 반대하여 부결되었는데 “이미 원활히 작동중인 세계최고의 사회보장제도”를 누리는 스위스에서 이런 투표를 하는 게 부럽기도 하고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우리나라에선 대표적인 “좌파 포퓰리즘 정책” 정도로 치부되던 그 “기본소득”이 코로나사태 덕분에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선을 보였다. 소고기 값이 오르고 모처럼 지역경기에 생기가 돈다는 보도에 이어 한번 더 하자는 의견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아닌지 나라 곳간이 걱정이다. 소비절벽이 심해지면서 기본소득은 비상시 경제정책으로도 주목을 받는 모양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화의 이득에서 소외됐던 이들을 위해 지금이야말로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고려할 때”라고 촉구하고, 빌 게이츠,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같은 이들은 “특정 기업들의 과도한 초과이익 중에 일부를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주자”며 구체적 재원마련 방안까지 제시한다. 재난소득으로 재미(?)를 본 여당은 기본소득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준비 중인데 언론은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예고한 ‘파격적 변화’가 기본소득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향후 여야의 기본소득에 대한 주도권 다툼까지 전망하고 있다. 2011년 8월 서울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한판 정책대결이 벌어졌다. 소득하위 50%에게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자던 서울시장은 투표함은 개봉도 못한 채 시장직을 잃고 이어진 보수 패배의 원죄를 짊어지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 후, 또 하나의 선별과 보편의 치열한 토론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진보는 줄기차게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다. 이번 재난지원금도 당초 재정악화를 우려한 정부가 소득하위 70%를 대상으로 설계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명칭은 선별적인 의미의 “지원금”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재난(기본)소득”이 된 것은 선거에서 여당이 이겼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을 걱정하는 보수의 입장은 2011년 무상급식 논란 때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기본소득의 보수 버전(version)이라 할 “안심소득”은 재정 여건상 기본소득은 불가능하니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정확히 구별하여 소득수준을 감안해 지원하고 고소득층에겐 주지 않거나 덜 주는 것이 소득불균등을 완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인데 결국은 선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념이나 공동체를 위한 정당의 주장은 오랜 역사적 배경과 지지자들의 이익을 기반으로 하므로 변화나 발상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은 전개될 새로운 질서에 어떻게 대처하고 발전시켜 나갈지를 고민할 때다. 그래서 필자는 보수야당이 예고한 “파격적 변화”에 주목하고 “빈곤하다고 지적되는 상상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보편적 기본소득과 선별적 안심소득 두 개를 놓고 투표가 이루어지면 우리 함양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리고 선거의 “결정권”을 가진 소위 스윙보터라 불리는 중도층은 어느 것을 선호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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