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는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다’ 이 구절만 보고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느냐며 비아냥거릴 수 있겠지만 조금만 참고 끝까지 읽어보자. ‘일단 와이프가 어디 여행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아무것도 쇼핑하지 않는다.<중략>... 가장 좋은 건 와이프가 하루 종일 입에 마스크를 덮고 있어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는 단순 바이러스가 아니다. 이건 축복이다’ 여기까지 다 읽고 빙그레 미소 짓거나 빵 터진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미국의 어느 페이스북에 실린 글로 코로나19가 만인의 적이며 미움의 대상으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요즘 큰 웃음을 주는 내용이다. 또한 빌 게이츠의 ‘코로나19는 정녕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라는 제목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회자되고 있다. 그의 글을 간단히 요약하면 인류의 평등, 건강의 소중함, 물질주의의 경고, 가족과 가정생활의 중요함, 난관 뒤의 평온 등 모두 열네 가지의 항목을 떠올리며 성찰한 내용이다. 나는 특히 가족과 가정생활의 중요함을 다룬 부분에 크게 공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가족과 가정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치고 있고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서 ‘우리 집’으로 다시 만들고 가족의 유대를 강화해준다고 쓰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처음엔 정말 두려웠다. 내가 걸린다면, 내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걸려 고통을 받는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가족을 더 생각하고 챙기게 된 것이다.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면 얼굴표정과 기침여부를 살피고 따뜻한 물과 차 그리고 힘을 줄 수 있는 음식을 챙겼다. 남편의 손을 더 잡아주고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등을 토닥이며 건강에 신경을 더 썼다. 가족의 소중함 특히 남편의 소중함이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일찍 들어오기도 해서 대화를 할 시간도 많아지게 되었다. 애틋한 마음이 생기니 추억이 떠올랐고 남편이 연애 시절에 사준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쓴‘자유로운 여자’를 꺼내어 들었다.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사람이 다섯 살이 되면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에 그녀의 영특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적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참 대단하고 크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세기의 사랑,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여러 자료를 찾아 읽어보았다. 둘은 1930년대 당시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계약결혼을 한다. 따로 살지만 사랑하고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한 파격적인 내용. 서로 여러 사람을 사랑하며 위태로운 상황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죽기까지 헤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사르트르가 죽은 1980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계약결혼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보부아르는 1986년 자신의 전기를 쓴 데어드르 베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와 사르트르 사이에 열정이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한다. 글을 쓰면서 그들은 상대방의 지성과 감성에 엄청난 자극을 주는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가 죽었을 때 보부아르의 가장 큰 슬픔은 그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죽음은 침묵이라고까지 표현했다고 하니 그들은 진정한 말동무였고 유일한 말동무였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이 통하는 상대방, 대화가 되는 말동무, 그것이 남편과 아내라면 정말 살맛나는 가정생활이 될 텐데. “자기야, 그때 왜 이 책을 나한테 선물했어?”문득 ‘자유로운 여자’를 다시 읽고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상기된 얼굴로 물어보던 나에게 남편이 던진 한마디. “내가 너한테 책 사준 적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노? 딴 남자가 사준 거 아니가?”띠웅, 이 넘의 신랑을 달려가서 따악 때려 줄까 아니면 추억을 버리는 게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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