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시작했던 코로나19바이러스를 위한 사회거리두기의 생활이 이제 봄을 넘어 여름까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일본도 4월7일에 나왔던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됐습니다. 상황이 완벽하게 안전해진 것이 아니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일단 그런 상황입니다. 저는 부모님께 2달에 한 번 정도는 가서 돌봐드리려고 부모님과 약속하고 일단 2월3일 일본에서 왔다가 그 후 못가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부모님께 적어도 1번 많으면 3번 전화를 합니다. 그러나 가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도와주지 못하고 답답합니다. 한번은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와서 엄마가 밖에 나갔다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평소 현관문은 열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그 날 식사도우미가 왔다갔던 후에 잠깐 문이 열려 있던 사이에 어머니께서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전화를 받더라도 제가 직접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알면 가까이 살고 있는 올케에게 전화를 해야 되는데 아버지는 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겁니다. 왠지 모르게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바로 올케한테 전화를 하고 올케가 경찰에 전화하고 조카도 바로 할아버지 댁에 가줬다고 하지만 그동안 저는 걱정만 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30분정도 지나 올케에게서 전화가 와서 어머님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했습니다. 멀리 안가고 집에서 5분 거리에서 해매고 있는 것을 아버지가 찾아서 데리고 왔다는데 안심하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제가 못가고 있는 동안 큰오빠가 2번 정도 부모님을 찾아갔었습니다. 그 중에 한번은 4월7일 정부에서 긴급사태선언을 발표하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빠가 오기 전에 어머님이 감기 때문에 미열이 나서 병원에 갔지만 오빠가 갔다가도 37.4도 정도로 열이 안 내려간 체 지금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때가 때이기 때문에 코로나 의심을 받고 주 2번 갔었던 데이 서비스에서도 제외가 됐습니다. 알츠하이머인 어머님은 아무래도 그 상황에 대한 자각이 없어서 모든 부담이 아버지에게 왔습니다. 그래서 석 달 사이에 3키로 정도 체중이 빠졌다고 합니다. 식사도우미가 와주시는 날은 괜찮지만 그 외에는 아버지가 식사도 준비하고 치우고 어머님 정신상태가 안 좋아지면 또 봐줘야 되는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나한테 봐주라고 하십니다. 그 때 고마운 것은 라인이라는 무료영상통화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길게는 1시간 반 정도 봐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열은 지금도 계속 있습니다. 그동안 3번이나 검사를 했는데 결과상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본인도 열 외에는 증상이 없어서 생활자체는 괜찮은데 문제가 뭐나면 케어서비스에 못 보내는 것입니다. 이때껏 2달 정도 데이 서비스를 못 받는 체로 집에 계셔서 아버님께서 정신적인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코로나가 아니라는 진단서를 받기 위해 큰 병원에 가서 또 검사를 하고 열은 있지만 코로나로 인한 열이 아니라는 진단서를 두 달 만에 두 분의 의사선생님에게 받고 제출하고 이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마 6월부터는 그 전처럼 주에 한 번은 1박 2일로, 한 번은 낮에 가는 것으로 돌보기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에 있는 남이 더 고마운 존재라는 속담이 있지만 제가 못가는 동안 올케가 아주 잘 도와줘서 이 속담의 뜻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쉽게 부탁을 못하시는 분인데 이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조금씩 올케나 조카(손자)에게 부탁을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역시 “네가 제일 말하기 쉬워서 빨리 와주면 좋겠다”라고 하셔서 갈 수 있게 되면 바로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올해 내에는 오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계에 퍼진 코로나 문제는 어디 한 나라만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이 안전한 상태가 되어야만 정상적인 생활이 다시 찾아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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