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때는 그렇게 많이 차린 것 같지 않은데 설거지를 할 때면 이렇게 많이 먹었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저녁 설거지 할 때 그렇다. 어제 저녁엔 아내가 닭튀김 요리를 했다. 솜씨 좋은 아내의 닭튀김 요리를 맨숭맨숭 밥, 김치, 된장국만으로 맞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산사춘과 함께 따뜻하게 영접했다. “우와~맛있다~ 정말 맛있네~” 감사의 뜻으로 아내에게도 한잔 권했다. 닭튀김은 정말 맛있었다. 맛있는 요리에게 훌륭한 요리사에게 브라보~지화자~ 산사춘에 닭튀김 한 접시, 밥 한 공기, 김치, 두부 된장국을 곁들였는데 먹을 때는 보이지 않던 그릇과 조리기구들이 설거지 하려고 고무장갑을 끼니 어디선가 갑자기 와장창 나타났다. 살짝 유감스러웠다. 접시가 대여섯 개, 공기가 둘, 국 그릇 둘, 종지 하나, 프라이팬, 냄비, 에어 프라이어, 수저, 밥솥, 수저, 주걱..... 많기는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전략을 세우고 수도꼭지를 튼다. 항상 그러하듯 아내가 뒤 꼭지에 대고 기름기 있는 것들이니 퐁퐁 잘하라고 소리친다. 아들 둘과 같이 네 식구가 살 때는 남자 셋이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며 했는데 아이들이 출가하고 아내랑 두 식구 살다보니 설거지는 내 전담이 되었다. 오늘 설거지해야할 접시, 공기, 국그릇은 모두 아내가 만든 것이다. 청자토나 백토로 모양을 만들어 한번 굽고 유약을 바른 뒤 한 번 더 굽는다. 아내가 물레를 돌려 성형하고 유약을 바르면 내가 가정용 전기 가마에 불을 올리고 두 번 구워낸다. 공기는 실금이 간 것도 있고 접시는 이빨 나간 것들도 더러 보이는데 정이 들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시중에서 산 그릇은 이빨 나가면 미련 없이 버리는데 집에서 정성들여 만든 것은 그러지 못한다. 내 밥공기는 만든 지 십 오년쯤 되었으니 이 그릇으로 밥을 오천 그릇 쯤 먹었을 것이다. 설거지하며 살펴보니 내 밥공기에 실금이 살짝 가 있다. 그릇을 구울 때부터 있었던 건지 오랫동안 밥을 담고 설거지하다 생긴 흠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으로도 오천 번 정도 더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날 만든 아내의 밥공기는 내 공기의 반 정도 크기지만 가는 실금하나 없고 단단해 보인다. 오천 번 정도 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 나는 가끔 그릇을 깨어 먹는다. 접시는 특히 잘 깨어진다. 내가 접시를 깨면 아내는 꼭 핀잔을 준다. 설거지하기 싫은 사람이 그릇을 깬다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릴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접시가 그냥 툭하고 반으로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 쓰임을 다하고 갈라지는 건데 이런 경우엔 핀잔을 받으면 좀 억울하다. 힘도 안 썼는데 그냥 깨지더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봐도 아내는 믿어주지 않는다. 아내가 믿어주지 않는 것보다 더 억울한 건 이 얄미운 접시가 한번쯤은 아내가 만질 때 깨어져야 하는데 꼭 내 손에서 명을 다 한다는 것이다. 설거지 하는 시간은 창의의 시간이라고 한다.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설거지를 진심으로 즐기며 설거지하면서 영감을 떠 올린다고 한다. 설거지를 진심으로 즐긴다니... 설거지 하는 시간이 창의의 시간이라니... 평범한 농부인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에게 있어서 설거지하는 시간은 잔머리 굴리는 시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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