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지? 잠결에 까마귀가 고양이 입을 빌려 내는듯한 묘(猫)한 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입을 앙다문 고양이의 구슬픈 야옹과 부리를 있는 대로 크게 벌린 까마귀의 아아악을 합성한 듯한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 결국 나는 잠이 깨고 말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현관에 까마귀가 날아와 울고 있을 리가 없으니 그 울음소리의 주인은 고양이임에 틀림없었다.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침대에서 나와 중문을 열어보니 수리가 현관 바닥에 널부러져 까마귀 소리를 내고 있는데 오른쪽 뒷다리가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다. 허걱~ 골절이다. 얼핏 보니 외상이 없어 수리가 높은 곳에서 추락해 다리가 부러진 거라고 확신했다. 이 녀석이 지붕에서 미끄러졌나? 아님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가지가 부러졌나? 보지 않아서 미끄러진 건지 나무에서 떨어진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리가 부러진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2년 전 내가 낙상사고로 발이 부러져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의 경험을 참고하여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순서를 정했다. 당장 수리의 부러진 다리를 임시 부목으로 고정시켜 2차 부상을 당하지 않게 한 뒤 병원으로 후송하고 수술을 시켜야 할 것이다. 압박붕대와 나무젓가락으로 수리의 부러진 다리를 임시고정하기 위해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내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신속하게 움직여 큰 도움이 되었는데 막상 환자가 협조를 하지 않았다. 겁을 잔뜩 먹은 수리는 퉁퉁 부은 자기 발에 손만 닿아도 까마귀 소리를 내며 거부의사를 확실히 했다.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들쳐 안고 동물병원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읍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서 다리가 부러진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먼저 온 젊은 부부가 어미에게 버림받았다는 아기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아직 이빨도 나지 않은 새끼였는데 초유를 구입해 먹이고 휴지로 대소변을 유도해주라는 간단한 처방을 받고 갔다. (처방은 간단했지만 처치는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수리는 뼈가 부러진 게 아니었다. 진료를 받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그 젊은 부부처럼 진료는 의사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얌전하게 처방을 받았어야했는데 내가 마치 의사라도 되는 냥 서 나갔던 것이 어처구니없고 부끄럽다. 노련해 보이는 그 수의사가 선입견 없이 차분하게 진료를 했더라면 촉진만으로도 골절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내가 마치 의사라도 되는 냥 다리가 골절되었다고 진단하는 바람에 방사선 사진을 찍게 되어 사진을 찍느라 수리랑 또 한 바탕 소동을 벌였다. 내가 보조로 방사선 피폭방지 조끼를 걸쳐 입고 할킴 방지용 두꺼운 장갑까지 끼고 수리를 잡아주었는데 수리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할 수없이 마취주사를 놓고 사진을 찍게 되었다. 판독 결과 뼈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발목에 난 작은 상처가 감염되어 닭다리가 된 걸로 진단되었다. 어쩌면 수리가 응급 부목 대는 걸 한사코 거부하고 방사선 촬영도 단호히 거부한 이유가 그냥 쫌 찍힌 거니 제발 오버 하지 말라는 항의였는지도 모르겠다. 수리도 무척 아팠겠지만 내가 더 놀라고 겁을 먹었던 것 같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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