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 무렵 서부 경남 명문 함양중학교를 다녔다. 공비 출몰로 학업 지장이 많던 마천에서 인자하신 염동석 교장 선생님 사랑 속에 마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함양중학생이 된 것이다. 이사 나온 함양읍(당시 석복면) 거면에서 개근생 우등생으로 3년을 잘 다녔다. 그 때 한중환 교장 선생님, 백질갑 교감(뒤에 함양여중 교장)선생님, 3년간 담임하신 이상복 수학 선생님, 박홍관 국어선생님, 김학곤 영어선생님, 황기 체육선생님, 정문현 미술 선생님, 김영자 영어 여자선생님의 얼굴 모습이 내 머리에 생생히 떠오른다. 지곡 출신 백질갑 선생님은 3학년 때 우리 반에 보충수업으로 들어오시어 고전 춘향전에 나오는 암행어사 이몽룡의 한시漢詩 한수를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다. 나는 지금도 고맙게 외고 있다.금준미주천인혈 金樽美酒千人血 / 옥반가효만성고 玉盤佳肴萬姓膏 / 촉루락시민루락 燭淚落時民淚落 / 가성고처원성고 歌聲高處怨聲高 남원부사 변학도 탐관오리를 봉고파직 시킨 이 통쾌한 이몽룡 한시를 나도 중·고·대학 교단에서 국어시간에 재미있게 가르쳐 주던 추억이 새롭기만 하다. 이 한시를 일찍 가르쳐 주신 백질갑 스승님 은혜가 한없이 고맙게 생각된다. 내가 진해 정훈참모실에 근무하면서 하귀송 정훈참모를 모시고 함양읍에 해병모병선전 왔을 때 함양 임군수님과 백질갑 은사님이 해병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잘 대접해 주셨다. 상림에서 함께 찍은 사진도 늘 추억 속에 그리움을 낳는다. 함양중학 1학년 2반 때부터 3의 2반까지 3년간 담임선생님이 되시어 ‘진리와 도덕’으로 급훈을 만드시어 교실 칠판 위쪽에 걸어 두고 그야말로 어린 우리 중학생들을 학문의 진리와 생활의 도덕을 정성과 사랑으로 가르쳐 주셨다. 백전에서 자전거로 출퇴근 하셨다. 수학을 가르칠 때 “겸해서 고로 성립되었다”를 너무 자주 말씀 하시어 “겸해서” 수학선생님 별명도 한 때 듣고 계셨다. 내가 서울로 고교 진학이 될 때 명문고 명문대로 진학하여 나라의 큰 인물이 되라고 격려해 주셨다. 이상복 선생님 진리와 도덕 교육에 힘입어 나도 교편을 잡으면서 제자들의 평생 가르침이 될만한 나의 교육철학을 만들었다. 나의 아호 송골松骨정신이 깃든 솔뼈세얼 교육으로 첫째 거짓없이 살자<참삶>, 둘째 뼈 있게 살자<뼈삶>, 셋째 빛있게 살자<빛삶> 줄여서 참삶 뼈삶 빛삶. 세 덕목을 나의 교육철학 줄기로 삼은 것이다. 이 솔벼세얼 한국의 얼인 짚신정신교육 한글사랑 나라사랑교육에 한 40년 교단에서 온 정성을 다 쏟으며 교육했다. 이런 나의 사상적 인격적 교육이 심화된 것은 중학 사춘기 청소년 교육을 이상복 선생님의 진리와 도덕교육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복 스승님의 가르침이 한없이 보람차고 내게 큰 은혜를 끼친 것이다. 이상복 선생님도 경남 관내 교장으로 정년퇴임 하셨다. 따님 결혼식 때문에 상경하시어 어느 예식장에서 인자하신 이상복 중학 담임선생님을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스승의 날 축전과 해마다 연하장으로 안부는 자주 드렸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그립기만 하다. 오늘날 21세기 당당한 대한민국 문단 한 시인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중학 3년 간 국어교육을 잘 시켜 주신 스승님으로 아직 93세로 생존해 계시는 박홍관 선생님의 은혜를 항상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첫 중간시험을 치루고 난 뒤에 1의2반 우리 반에 들어오신 박홍관 국어선생님은 내 국어시험지를 들어 보이시며 이 반의 오동춘 학생이 1학년 4개 반에서 99점으로 국어성적이 으뜸이라고 크게 칭찬해 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정말 뜻밖의 과한 칭찬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너무 고마웠다. 깊이 존경감이 솟구쳤다. 3의 3반 담임도 맡으신 박홍관 선생님은 3년간 내내 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셨다. 나도 마음으로 존경해 모셨다. 중2학년 때 일기는 생활의 기록이 된다는 등 몇 가지 장점을 말씀하시고 일기를 쓰라고 권장해 주셨다. 감수성이 강한 나는 박홍관 국어선생님 가르침을 따르며 중2때부터 여든 고개를 많이 넘긴 지금까지 근 70년 나는 생활일기를 쓰고 있다. 오직 박홍관 선생님 가르침의 은혜 때문이다. 서울 용산에 살 때 숙부댁이 화재를 만나 함께 살던 나의 책이 잿가루가 돼버렸다. 중학일기, 고1 일기가 다 타버린 것이다. 한없이 아깝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거기 나의 사춘기 감정이 안네의 일기처럼 다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박홍관 스승님 가르침으로 국어공부 잘 하여 중·고·대학 국어 교편을 잡았고 중학 때부터 학원 중학생 잡지를 탐독해 가며 시 공부 열심히 해서 시인의 길에도 오르게 됐다. 연세대학교에서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박사, 한결 김윤경 박사님, 한글사랑 나라사랑을 깊이 배우고 한글운동가로 한글사랑 나라사랑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1954년 3월 함양중학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간 나와 박홍관 선생님은 오랫동안 뵐 수 없었다. 늘 뵙고 싶은 중학 은사님 소식은 함양읍내 하약국 하두현 중학 동창을 통해 연락처를 반갑게 알 수 있었다. 얼른 연락드리고 2014년 스승의 날 다음 날인 5월16일 뜰에 봉숭아꽃이 고운 서상면 대남리 대남교회 앞에 있는 박홍관 선생님댁을 아우 오동해 사장 차로 찾아뵙게 되었다. 무척 반가워 하셨다. 50년 반세기만에 사제지간의 만남이었다. 사모님은 몇 해 전에 돌아가시고 수석 모으는 취미로 수석처럼 깨끗하게 살고 계셨다. 2층 수석전시실도 설명하시며 구경시켜 주셨다. “자네보다 내가 더 젊네” 하시던 90대 건강하신 박선생님 말씀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중학 1학년 때 중간고사 시험 때 외어 쓰라던 조선조 이현보<1467-1555> 옛시조 한수가 머리에 떠올랐다. 굽어는 천심록수千尋綠水 돌아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십장홍진十丈紅塵이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江湖에 월백하거든 더욱 무심하여라. 농암聾岩 이현보가 경북 예안 고향에 내려가 자연에 심취한 어부의 욕심 없는 청백한 생활을 잘 읊은 시조인 것이다. 박홍관 선생님도 춘향묘가 있는 서상 자연을 사랑하시어 중학 1학년 국어시험에 자연사랑의 이현보 시조 한수를 답안지에 외어 쓰게 하신 것이다. 물속에 잠긴 수석을 즐기는 박 선생님 수석사랑도 자연사랑이 아닐 수 없다. 대남리에 흐르는 개울물도 맑고 아름다웠다. 오형선吳亨善<1875-1944>장로가 1928년 8월 26일 설립한 근 100년 되는 대남교회는 박홍관 선생님집도 사랑하시며 서상의 자연처럼 서상면민들 가슴에 아름다운 자연의 믿음 씨앗을 뿌려 주는 듯 그런 느낌도 들었다. 박홍관 선생님이 서상의 자연을 사랑하시듯 나도 지리산 천왕봉이 가까운 두메산골 마천을 사랑하여 1999년 3월 1일 80주년 3.1절에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에서 설립한 짚신문학회 회원들의 기도와 노력으로 마천면 강청리 도촌 곰달래산 기슭 지리산교회 앞 자리에 짚신창립20돌 짚신기념비 큰 비석을 2020년 10월 9일 573돌 한글날에 세웠다. 2019년 5월 15일 제38회 스승의 날 기념과 세종탄신 622돌을 기념하여 나의 중학 모교 함양중학교 학생들과 우리 짚신문학회 회원들이 제65회 짚신문학회 시낭송회를 함양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감명 깊게 잘 마쳤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은 애국가도 4절까지 다 부르고 강소천 아동문학가가 지은 <스승의 은혜> 노래도 3절까지 다 불렀다. 잘 지도해 주신 최경호 교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 협력과 노고가 컸다. 모교 발전에 애써 주시니 모두 감사했다. 올해 39회를 맞는 스승의 날에 중학 은사님으로 하늘나라 가신 한중환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백질갑 교감선생님, 이상복 담임선생님 그리고 아직 생존해 계시는 박홍관 국어선생님을 그리운 선생님으로 추억 속에 되새겨 보았다. <스승의 은혜> 후렴 노랫말처럼 “아 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 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우리는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는 스승의 사랑에 감사하고 그 은혜는 나라 겨레를 위하여 큰 일꾼으로 큰 빛을 드러내며 보답해야 할 것이다. 제39회 스승의 날에 나를 참되거라 바르거라 일깨우고 가르쳐 주신 나의 초·중·고교, 대학 스승님들께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려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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