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조지훈님의 시구(詩句)가 생각나는 고향 벚꽃 길을 아내랑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는가봅니다. 아내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쳐주고 아내 편에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옳고 그름을 떠나 아내 편을 들어주어야겠덥니다. 마음에 들었는지 아내는 남편이 아니라 내편이 있어서 좋답니다. 아내는 이러나저러나 같이 지내야할 사람들이라며 직장 동료들과 나눠 먹는다고 처가 산에 머위 채취하러 가자고 해서 처가에 들러 장모님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장인어르신께서 요 며칠 사이 몸이 불편하신데도 자식들 챙겨준다며 머위 채취하러 나서는 것을 장모님께서 말리셨답니다. 며칠 전부터 속이 안 좋아 토하셨다고 하고 낫을 챙겨주시다가 옆으로 넘어질듯 하십니다. 어디 편찮으시냐고 여쭈어도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그렇지 괜찮다고 하십니다. 집에 내려와서 아무래도 아버지가 좀 이상한 것 같으니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병원에 모시고 가자고 아내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내가 친정 부모님 챙겨주어 고맙다고 하며 휴가를 내고 병원에 모시고 가서 위내시경도 하고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뇌혈관에 이상 징후가 좀 보인답니다. 의사선생님이 크게 염려할 것은 아닌데 추이(推移)를 지켜보자고 합니다. 장인 장모님은 애들 키우기도 힘든데 돈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힘들게 고생하시고 없는 시골 살림에 아내 공부시켜 주셔서 제가 그 혜택을 다 누리고 사는데 병원비 걱정 마시라고 했더니 셋째가 말도 참 예쁘게 하고 최고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보증선 일로 충격 받아 돌아가시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10여년을 지내다보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장인 어르신을 만나자마자 저 분이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싶어 아내랑 결혼 하고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지냈는데 장인아버지가 편찮으시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저녁을 사드리면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정을 시켜드리니 얼굴 표정이 한결 밝아지셨습니다.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몸이 불편하신데도 셋째사위 좋아한다고 흰민들레를 캐서 김치 담았다고 챙겨주십니다. 이래저래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코로나19로 일상적인 것들이 다 멈추어 버리고 그동안 당연하게 누리고 지냈던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 우리가 늘 당연시하며 누리던 것들, 너무 익숙해서 소홀히 대했던 것들, 너무 편해서 신경을 덜 쓰던 사람들, 이 번 기회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장인아버지 뵈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 작은 일들도 사려(思慮) 깊게 바라보고 내 것을 아낌없이 내어줄 줄 아는 것인가 봅니다. 올해 4월은 유난히 길고 지루하고 침울해서인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절망가운데서 희망을 노래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황무지가 생각납니다. 4월이 가고나면 이 상황도 지나가고 우리 장인아버지도 건강하게 예전처럼 지낼 수 있겠지요. 4월의 시련과 고난이 밑거름이 되어 희망의 꽃씨가 싹터서 5월에는 희망의 꽃이 가득 피어 일상의 기쁨을 누리는 날들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낙화’ (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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