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요즘 통 외출을 않고 내 주변에만 왔다리갔다리 한다. 빙빙 돌며 시도 때도 없이 놀아달라고 보챈다. 갑자기 내가 좋아졌나? 사람이 변하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할 수도 있나?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걸까? 도대체 집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요즘 경기가 안 좋다는데 혹 사업이라도 망했나? 곶감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잘나간다고 무리하게 규모를 키우다가 넘어졌나? 내가 아무리 성격이 원만하고 사교적이라고 하지만 집사의 지나친 응석을 받아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고양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두 발을 가슴에 묻고 식빵을 굽는 이 고독한 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고양이는 사람처럼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고양이는 이 고독하고 철학적인 사색의 시간에 영혼을 정화하고 살찌우는 것이다. 식빵을 굽듯 두 손을 가슴에 묻은 뒤 나는 사색한다. 오늘 새벽 사냥에서 아깝게 놓친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떠올린다. 돌담에서 감나무 가지로 뛰어(날아)올라 잡았는데 어린 새끼라고 너무 방심한 나머지 그만 놓쳐버렸다. 새는 쥐가 아닌데 앞마당에서 쥐를 가지고 놀 듯 장난치다 그만 날려버렸다. 아무리 어려도 새는 샌데 쥐가 아닌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달아난 오목눈이가 부리로 내 코를 톡톡 쫀다. 내가 사색하다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뜨니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안보이고 집사가 검지로 내 콧등를 톡톡 두드리고 있다. 밥그릇에 사료를 한 컵 부어놓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점심 먹으라는 거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성의를 봐서 몇 알 깨작깨작 먹다가 산책을 나간다. 집사가 따라 나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한다. 내가 역기가 아닌데 귀찮게 말이다. 질본에 묻는다. 고양이와 사람은 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 거지? 요즘 집사가 하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랑 놀아주는 것(사실은 내가 놀아주는 것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TV와 컴퓨터를 보는 일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두 가지가 요즘 집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그날 SNS로 받은 곶감주문을 택배 포장하는 일에 한 시간 정도 공을 들이는 것이 전부다. 꽃이 피고 기온이 올라가서 이제는 곶감을 아이스박스에 얼음팩 넣어 깐깐하게 포장을 한다고 한다.(아옹~ 이 글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다옹~) 어쨌든 사회적 거리두기의 부작용이 고양이와 TV, 컴퓨터와의 거리 좁히기로 나타난 것이다. 집사의 말에 의하면 처음엔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단다. 이참에 TV로 영화나 실컷 보고 이참에 SNS에 글도 올리고 이참에 친구들이 올린 포스팅에 키득거리고 시시콜콜 댓글도 달고 그런대로 즐거웠단다. 그런데 그 재밌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이 보이지 않자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엾은 집사는 갑자기 고양이의 삶과 철학에 대한 논문이라도 쓸 것처럼 열정을 보였다. 고백컨데 나도 처음에는 그런대로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거도 사흘 나흘이지 고양이와의 거리 좁히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나는 피곤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집에 양몰이 개인 셔틀랜드 쉽독이 두 마리 있는데, 내가 시큰둥하자 집사가 현명하게도 나에 대한 넘치는 관심과 헌신을 활력이 넘치는 이 개들과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폭발적이었다. 그들은 집사의 어깨에 흙발을 터억 걸치고 침이 질질 흐르는 혀로 집사의 얼굴을 핥으며 환영했는데 살짝 질투가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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