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농사짓던 시절도 옛 이야기다. 기계의 도움으로 논을 갈고 밭을 일구고 작물을 심는다. 양파농사가 시작되면서 함양의 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조용했던 이곳이 분주해 진걸 보니 농민들의 마음도 바빠진 모양이다. 농민에겐 멀리 있는 자식보다 더 고마운 존재가 농기계다. 함양에서 농기계를 수리하고 판매도 하는 LS농기계·얀마농기계 대리점 기사 임규현(27세)씨를 만났다. “아버지가 농기계 대리점을 하셔서 자연스럽게 기계를 접하다 보니 전공을 하게 되었다”며 이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임규현씨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조작하는 걸 좋아하고 재미있어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놀이터 대신 작은 포크레인 위에서 놀았다. 30여년간 LS농기계를 운영해 온 임요한 대표가 규현씨의 아버지다. 규현씨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고 함양고등학교를 졸업, 경상대학교 농기계공학과(생물산업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설계부터 엔진은 물론 유압회로 등 기계의 기본 원리부터 내부구성까지 꼼꼼하게 배웠다. 전공을 했으니 자신만만하게 현장에 뛰어든 규현씨,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예초기 하나 고치지 못해 사수에게 머리를 쥐어 박혀야 했다. “학교에서 다 배웠다는 생각에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었죠. 이정도 쯤 내가 못 고치겠어 하는 마음에 덤벼들었지만 애를 먹었죠” 하지만 규현씨는 난관에 부딪힐 때 마다 물어보고 다시하기를 반복하며 원리를 터득해 갔다. “처음으로 트랙터를 수리했을 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수리한 뒤 시동이 켜졌을 때 쾌감은 정말 짜릿했죠”라며 한 단계 성장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본인을 농기계 고치는 기사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임규현씨는 공장관리에서 경영까지 책임지고 있는 위치에 있다. 농기계는 특수한 장비라 수요, 공급이 적다. 그래서 자동차와 달리 영업과 수리(AS)가 한 곳에 결합돼 있다. 규현씨의 최종 목표는 함양의 대농가를 고객으로 유치하는 것이다. 그는 ‘젊은 녀석이 기계 하나 다룰 줄 모르면서 농기계를 팔려 하냐’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농기계를 잘 알고 잘 다루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 규현씨는 지금 현장에서 기름때를 묻히고 있는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나이가 단점이 되지 않도록 틈틈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농기계 정보를 찾아보고 언제 써 먹을지 모르지만 특수하고 까다로운 분야나 수리법도 놓치지 않고 제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 농민들이 가장 원하는 건 성수기 때 고장 난 농기계를 빨리, 꼼꼼하게, 완벽하게 수리해서 원하는 시간에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바쁜 농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현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한창 바쁜 시기에 기계가 고장 나면 농민도, 기사도 마음이 바쁘다. 수리해야 할 농기계가 한꺼번에 몰리면 꼼꼼하게 체크하고 완벽하게 점검할 수 없다. 이걸 대비해 규현씨는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고객에게 농기계 정비를 미리 받아볼 수 있도록 전화서비스를 실시했다. 이 서비스는 규현씨가 아버지에게 제안해 시작한 것으로 고객 만족도도 높다.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도시로 나갔고 고향을 지키는 동기는 드물다. 흙 만지고 기름만지기 싫어하는 젊은이와 달리 규현씨는 자신의 현재를 ‘내 그릇을 키우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큰 그릇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기에 규현씨는 “농기계를 다 만져봤다 해도 아직 발전하는 단계입니다. 저는 한참 멀었죠. 노력하는 수 밖에 없어요. 빠른 길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야죠” 라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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