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소년이 고향을 떠나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쳐 보기로 결심했다.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현자를 찾아가 조언을 청하였다. 현자는 아무 말없이 세 글자를 써 주었다. “불요파(不要怕)” 즉, “두려워 하지말라”는 뜻이다. 현자는 “인생의 비결은 딱 여섯 글자란다. 오늘 세 글자를 가르쳐 주었으니 네 인생의 절반을 이 글자대로 살라”고 조언하였다. 어느덧 소년은 중년이 되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현자를 찾아갔다. 현자는 이미 죽었고 그 아들이 편지 한통을 건네준다. 편지에는 또 다른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후회하지 말라”는 “불요회(不要悔)”였다. 한병철 교수(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는 현대사회를 “우울증이 지배하는 피로사회”로 진단한다.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고 정의한다. 한 교수는 현대인들은 타자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 착취에 스스로 함몰된다. 결국 자기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자발적으로 착취한다는 특징을 꼬집는다. 불안한 미래는 누구에게나 두렵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자기착취를 통해 스스로 가해자의 인생길을 택한다. “불요파”의 정신으로 걷는 모습이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불요회”의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심리학 용어가운데 “윤형본능(輪形本能)”이 있다. 알프스 산에서 길을 잃고 조난당한 사람이 13일 만에 구조를 받았다. 그는 험준한 얼음산을 방황하다가 졸면 죽는다는 생각에 얼어 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걸었다고 한다. 구조대가 13일 동안 걸어온 길들을 살폈는데 6킬로미터 반경을 빙빙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조난자는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앞만 보고 걷고 걸었는데 결국 길을 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윤형본능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누군가는 가슴이 뛴다. 푸르른 창공을 보며 누군가는 긍정적인 힘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반복되는 일상의 따뜻한 햇살에 누군가는 “불요회”의 정신을 기억한다. 우리의 일상이 된 인터넷은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수많은 긍정적, 부정적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국가는 가족의 기능과 형태뿐만 아니라 삶의 질(QOL, quality of life)을 측정하고 생애주기(Lifecycle)에 따른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의술의 발달은 100세 시대를 열었고 생명연장의 꿈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작금(昨今) 한국사회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세계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다른 면을 살펴보면 금번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는 사회적 가치와 우리 삶의 양태(樣態)를 바꿔 놓고 있다. 특정 사건을 통해 삶의 형태와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는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같은 시대에,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선제적 대응”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으로 이기적인 생각보다 먼저 이웃을 배려하는 양보와 기부문화의 많은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 빠른 정보공유와 신뢰는 불안의 정신을 배려와 양보의 정신으로 바꾸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한국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토대로 전 세계 코로나19 대응모델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제 일상적 생활뿐만 아니라 군민 모두가 일련의 “코로나19”라는 부정적 경험을 긍정적 힘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에 있다. “불요파(不要怕) 불요회(不要悔)”의 정신으로 돌아서야 할 때다. 때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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