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매화(梅花)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기품, 결백, 인내 등으로, 동양화에서는 사군자(四君子)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며, 겨울을 견디는 세 벗인 세한삼우(歲寒三友), 송죽매에도 들어간다. 따라서 매화는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으며, 또한 여인의 순결과 정절을 상징하여 매국잠(梅竹簪)이라는 비녀로도 많이 사용되었다.따라서 매화의 4가지 귀한 모습이라는 매유사귀(梅有四貴)가 있다. 첫째, 귀희불귀번(貴希不貴繁), 가지가 드문 것이 귀하고 무성한 것은 귀하지 않다.둘째, 귀로불귀눈(貴老不貴嫩), 나무가 오래 된 것이 귀하고 어린 것은 귀하지 않다.셋째, 귀함불귀개(貴含不貴開), 꽃이 다소곶이 오므린 것이 귀하고 활짝 핀 것은 귀하지 않다.넷째, 귀수불귀비(貴瘦不貴肥), 나무가 마른 것이 귀하고 살찐 것은 귀하지 않다. 이러다보니 다른 꽃놀이와는 달리 유독 매화를 찾는 것을 탐매라고 한다. 탐매 중에서도 매화 핀 가지에 보름달이 걸린 월매(月梅)를 최고의 묘미로 꼽는다. 그리고 매향(梅香)도 낮에는 꽃에 눈이 팔려 향기를 놓치므로 밤에 조용히 집중해서 맡아야 되며, 매향(梅香)은 화향천리(花香千里)라고 한다. 옛 선비들이 즐긴 진정한 탐매는 까다롭기까지 하다. 암향(暗香), 어둠 속에서 그윽이 풍기는 향이다. 암향은 코를 들이대고 직접 맡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깨뜨리면서 고요하게 번져오는 향기를 저절로 맡는다 하여 문향(聞香)이라고도 한다. 소영(疏影)은 오래되고 구불구불한 가지에 핀 매화가 듬성듬성 비치는 그림자를 말하며, 마지막으로 월황혼(月黃昏), 즉 달빛에 비치는 꽃이다. 탐매를 하자면 북송시대의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알려진 화정(和靖) 임포(林逋, 967 - 1028)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당시 부패한 정치에 환멸을 느껴 항주의 서호부근 고산(孤山)에 은거하며 결혼도 하지 않고 20여 년 동안 외부에 나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집 주변에 300여 그루의 매화를 심은 후 매화를 감상하고,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매화를 아내로(梅妻), 학을 아들로(鶴子), 사슴을 집안 심부름꾼(鹿家人)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그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를 보면 탐매의 기본인 암향, 소영, 월황혼이 모두 들어있다.衆芳搖落獨喧姸(중방요락독훤연), 모든 꽃이 떨어지고 홀로 곱고 아름다워,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작은 동산의 풍정을 다 차지했구나.疏影橫斜水淸淺(소영횡사수청천), 성긴 그림자 비스듬히 얕은 물에 비치고,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그윽한 매화향기는 달빛 황혼에 떠도네.중국 북송 때의 문필가인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매화(梅花)>도 암향을 잘 표현한 시로 유명하다.牆角數枝梅(장각수지매), 담 모퉁이 매화나무 몇 가지,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구나.遙知不是雪(요지부시설),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아는 건,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그윽한 향이 풍겨오기 때문이다.매화하면 이 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퇴계가 모델인 천원 권 지폐 속에도 왼쪽 위에 매화가 그려져 있다. 그는 매화시 72제 107수를 남겼으며, 그 중에서 91수를 따로 모아 매화시첩을 만들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매화시보다 두향과의 사랑이야기가 더 절절하게 전해온다. 1548년 퇴계는 단양군수로 부임하고 그곳에서 관기인 18세 두향과 매화를 매개로 한 사랑이 싹텄으나 9개월 후 풍기군수로 떠나며 이별을 했다. 두향은 떠나는 퇴계에게 귀한 ‘녹악백매’(꽃에 초록빛이 감도는 귀한 매화) 화분을 선물한다. 이들은 이후에 다시 만나지는 못하였고, 퇴계가 떠나자 두향은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기적에서 빼줄 것을 청하고, 퇴계를 존경한 사또는 그녀의 청을 들어줬다. 퇴계는 두향이 생각날 때마다 매화시를 짓고, 두향은 남한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 퇴계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았다. 1570년 음력 12월 7일 퇴계는 유언과도 같이 “저 매화에 물을 좀 줘라”하고는 눈을 감았다. 퇴계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나흘을 걸어 안동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무덤은 지금 충주호 근처에 있다. 퇴계의 13대 후손인 이육사(본명 이원록) 또한 할아버지의 매화사랑 영향인지 그의 시 <광야>에서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라고 노래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