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래 없는 코로나19 때문에 전국이 시끌 거리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막대한 국력이 소모되고 전 국민이 힘들어 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의 방역단계를 심각단계로 올렸다. 심각단계란, 방역당국에 따르면 감염병 위기 단계는 관심, 주의 , 경계, 심각 등 4단계로 나눈다고 한다. 해외신종발생의 단계를 관심단계로 보고, 국내 유입된 단계를 주의 단계로 보고, 제한적 전파를 경계단계로 보고, 지역사회 또는 전국에 확산하여 퍼지는 단계를 심각단계로 본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부는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나온 2020년 1월 20일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조정 했다. 그리고 1주일 후 확진자가 4명으로 증가한 뒤에는 경보 수준을 경계수준으로 올렸다. 그리고 정부는 2월 23일 확진자 556명에 이르자 드디어 2월 24일 위기상황을 심각단계로 격상했다. 지금 학교 휴교령이 내려지고 각종 학원이 폐쇄되고 종교단체나 부락 노인정까지 사람이 모이는 곳은 문을 닫고 있다. 특별히 마스크 때문에 난리이다.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고 농촌의 어르신들은 몇 십리 길을 가서 농협 하나로 마트나 우체국에서 사야 하는데 시간과 교통수단이 여의치 못하여 힘들어 했다. 그래서 졸지에 국가는 배급제로 전환했다. 자유란 무엇인가? 칸트의 자유에 대한 개념을 빌려 보고자 한다. 우리는 자유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다. 칸트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는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개념이다. 칸트의 논리는 이렇다. 다른 동물처럼 쾌락이나 고통 회피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식욕과 욕구의 노예로 행동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은 우리 밖에 주어진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허기를 달래려고 이 길로 가고, 갈증을 해소하려고 저 길로 간다. 사람들은 흔히 천성과 교육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스프라이트 음료를 먹고 싶다는 욕구는 유전자에 새겨진 욕구일까, 아니면 광고에 자극 받은 욕구일까? 칸트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다. 내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든, 사회적으로 훈련된 것이든,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동은 아니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자율적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 반대 개념과 대조하는 것이다. 칸트는 ‘타율’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이를 포착했다. 내가 타율적으로 행동한다면, 내 밖에 주어진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작금에 많은 사람들이 서울중앙 한 복판에서 집회를 가지기도 하고 신천지 집단의 비협조 때문에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결사집회의 자유와 묵비권의 자유가 있지만 국가 전체가 코로나로 힘들어 하고 수십명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자기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20세기 전반 미국의 저명한 법률가이자 법철학자였던 러니드 핸드(Learned Hand) 판사의 연설문을 꺼내 읽어 본다. 이 연설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핸드 판사가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한 짧은 연설이다. 그가 말하는 자유의 중요성과 그 의미는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 온다. “자유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제가 그것을 정확하게 정의할 순 없습니다. 다만 제 믿음을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자유정신이란 옳다는 것을 너무 확신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자유정신이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정신입니다.”라고 했다. 자유가 인간 본연의 권리라면 사랑은 인간의 의무이다. 그리고 자유와 사랑이 만나면 진정한 정의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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