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하루 두 번 밥만 얻어먹고 사라지던 길냥이 서리가 달라졌다. 그동안 녀석은 경계를 하며 조심스레 눈치 밥만 먹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한마디로 보급 투쟁하는 거 같아 살짝 괘씸했다. 한편으로 나는 녀석이 어디서 잠을 자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몇 번 사라지는 녀석의 뒤를 밟아본 적도 있는데 눈치 빠른 녀석의 걸음이 더 빨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반년이 넘도록 밥을 얻어먹었으면 하다못해 꼬리라도 한번 흔들어주든지 아님 등이라도 한번 쓰다듬어 보게 해주는 게 도리일 것이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녀석은 좀처럼 나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그런 서리가 어찌된 일인지 요즘 내가 사료 그릇을 들고 나오면 내 발목에 머리와 등을 슬그머니 비벼댄다. 그리고 그동안은 현관 앞 데크에서 각설이 타령을 했는데 이제는 개구멍을 통해 현관에까지 밀고 드루와 밥을 달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밥그릇을 들고 나갔더니 내 발목에 목덜미를 비비며 우정을 과시했다. 나는 사료를 주며 녀석의 등을 은근 슬쩍 건드려보았다. 녀석은 나의 손길에 깜짝 놀란 듯한 몸짓으로 뒤로 물러서더니 잠시 후 구겨진 용기를 펴고 다시 그릇에 머리를 박고 웅얼웅얼 소리를 내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서리라는 이름은 수리 밥을 서리해 먹는걸 보고 지어준 거다. 길냥이 서리는 여러모로 집냥이 수리와 비교가 된다. 수리도 처음엔 길냥이었지만 길에서 만나는 첫 순간부터 서슴없이 나에게 다가와 내 발목에 목덜미를 문질렀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듯했다. 그런데 서리는 내가 매일 하루 두세 번 밥을 주며 정성을 들인지 거의 8개월 만에야 겨우 내 발목에 목덜미를 비볐다. 둘은 외모도 눈에 띄게 비교가 된다. 둘 다 치즈대비라는 멋진 기성복을 입었고 둘 다 수컷이지만 수리는 귀공자처럼 곱상하고 목소리도 미성의 카운터테너인데 반해 서리는 한눈에 조직에 몸을 담은 것처럼 보이고 음치다. 수리는 배가 고프면 고개를 치켜들고 미성의 파리넬리가 울게하소서를 부르듯 먹게하소서를 노래하는데, 서리는 목에 힘을 주고 조폭이 힘없는 업주를 협박하듯 어흥거린다. 모르는 사람은 내가 이렇게 애기하면 서리를 차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외모가 다는 아니겠지만 서리는 확실히 거칠게 생겼다. 어떤 날은 얼굴에 피를 뚝뚝 흘리며 밥을 먹으러 오기도 해서 나를 놀래킨다. 영역 싸움을 하다가 상처를 입은 모양인데 손길을 허락하지 않으니 치료를 해줄 수도 없고 난감하다. 한번은 얼굴에 상처가 제법 깊어 보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지연치유가 되고 털이 다시 자라 지금은 표시가 나지 않는다. 어쨌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서리 때문에 나는 요즘 살짝 고무되어있다. 아내에게 서리가 발목에 목덜미를 비비더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는 아랫입술을 쑤욱 내밀고 좋기도 하시겠수~하고 놀린다. 나도 모르게 우쭐했던 모양이다.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겠다. 고백컨대 나는 요즘 서리 때문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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