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상림은 놀이문화의 공간으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20세기 들어 상림의 놀이문화 공간은 상림운동장이었다. 20세기 들어 서구의 스포츠 문화와 전통 놀이문화는 뒤섞여 나타난다. 1945년에는 해방기념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가까운 지역 사람들이 모여 상림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천령문화제 행사를 보면 마스게임, 마라톤 같은 스포츠와 차전놀이나 오광대 같은 민속놀이가 뒤섞여 있다. 이 행사는 함양군에서 주도하고 함양읍 사람들이 참여하는 형식이었다. 딱딱하고 틀에 잡힌 놀이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1962년부터 이어져 오는 군민체육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이 혼동의 시기가 지나면서 현대의 스포츠는 공설운동장으로 옮겨갔고 민속놀이는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갔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단오나 명절이 되면 상림에서 그네뛰기, 씨름 같은 행사가 열렸다. 농경시대의 특별한 절기에 즐겼던 놀이들이다. 우리의 민속놀이는 마을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공동체에 끈끈한 유대감을 안겨 주었다. 피로를 풀고 즐기는 흥미에 그치지 않았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상생하는 질서가 있었다. 일과 놀이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삶의 한 과정이다. 일이 인류의 목숨과 생활을 지탱하는 현실적 도구라면 놀이는 문화·예술의 상상력을 키우는 이상적 틈새이다. 놀이는 먹고 사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정신적 활동이다. 신바람 나는 놀이의 행위는 공동체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치유 행위이다. 삶의 가치와 철학을 익히는 상생의 공유 행위이다. 하지만 일과 놀이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낮에 일을 하면 밤에 쉬어야 하는 인간의 몸이 그러하듯 자연의 만물은 모두 이 질서 속에 있다. 이것은 돌고 도는 자연의 순환 고리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고된 일손을 놓으면 자연스럽게 놀이에 열중하였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해학과 풍자, 철학이 깃든 다양한 놀이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차전놀이나 오광대는 상생의 질서를 꿰뚫는 우리의 수준 높은 놀이문화이다. 순수한 민간영역의 놀이형태로는 해치가 있다. ‘회추’라고도 하는데 힘겨운 농사의 빈틈을 이용하여 신나게 노는 일이다. 이날만큼은 노동에 얽매인 생활의 고통을 내려놓고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해치는 요즘 말로 야유회라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상림 숲에 와서 미나리 초무침을 하고 돼지를 삶아서 ‘해치’를 즐겼다. 술을 한 잔씩 돌리고 흥이 오르면 춤을 추고 민요를 즐겨 불렀다. 장구의 장단에 흥을 돋우며 고된 일상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았다. 해치는 고된 일상을 벗어나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공공연한 일탈이었다. 어머니들은 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상림 숲으로 나왔다. 한적하고 적당히 가려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마련했다. 장구치고 춤을 추며 종일토록 놀았다. 즐거운 가락과 흥의 뒤편에는 꼭꼭 눌러 놓았던 한(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서러운 시집살이와 고된 농사일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해치는 여인들이 가슴 속에 쌓여있던 응어리와 한을 풀어내는 배출구가 되었다. 불과 30~50년 전 산업화과도기의 농경시대 얘기다. 돌이켜 보면 식생활에 함몰된 시대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 아픔은 시대를 거슬러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상림의 숲에서는 많은 사람이 해치를 즐겼다. 함양읍에 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읍의 서북쪽에 있는 병곡면, 백전면, 그리고 남쪽에 있는 유림면, 휴천면 사람들도 찾아왔다. 2000년대 들어 놀이문화는 휴식과 관광 그리고 취미나 치유 활동으로 변하게 되었다. 숲길의 동선을 통제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등 주변 환경을 정비하였다. 유장한 지리산과 대봉산 능선, 위천 수원지는 여유와 사색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강둑 나무의자에 앉아 산맥과 강물의 넉넉한 경관을 보고 있으면 마음에 고요한 평화가 깃든다. 아늑한 숲길은 대화와 공감의 걷기 공간이 되었다. 자유롭게 숲을 걸으며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홀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색의 시간이 될 수 있다. 함화루 우물에서 중앙숲길을 통해 맨발걷기를 할 수 있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며 다양한 활동도 할 수 있다. 자연생태 관찰, 글·그림·사진·음악 활동 등등. 20세기 이전 함양상림에서 벌어진 놀이문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놀이의 장소가 함양상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때는 당연히 민속놀이 위주였을 것이다. 20세기에는 상림운동장에서 함양의 놀이문화가 이루어졌다. 민속놀이와 현대의 스포츠, 그리고 군대 문화가 섞여 있었다. 21세기를 맞은 지금은 놀이문화의 성격이 또 바뀌게 되었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체육활동에서 휴양치유 활동으로. 이처럼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함양상림의 놀이문화를 살펴보았다. 또 한 세기가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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