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면 이전마을의 참외밭에서 중학생이던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원두막을 지었다. 당시 지은 원두막은 기둥이 가늘어 손으로 흔들면 휘청거렸을 정도로 약했지만 원두막에서 놀던 추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 한번 본 건 뚝딱 만들어 내곤 했던 중학생 아들은 20대 청년이 되어 나무로 작업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지었던 기억을 되살려 원두막 짓기에 도전했다. 원두막 장인 김종권(68세)씨는 처음 원두막을 짓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설계도, 도면도 없이 만들었던 원두막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남에게 공짜로 주기도 수차례. 하나씩 만든 원두막을 전시해 두었더니 사람들이 사 가고, 어떤 이는 주문을 하기도 하면서 김종권씨는 원두막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게 됐다. 고향 안의면을 떠나지 않고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김종권씨는 화림건업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30여년간 고집스레 원두막 짓기에 공을 들였다. 함양 읍면 마을 곳곳, 마을회관 앞에 설치된 원두막은 대부분 김종권씨의 작품이다. 아마도 수백개의 김종권표 원두막이 함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함양뿐만 아니라 전라도부터 대구, 구미, 남해, 금산은 물론 대구 서문시장 안에도 김종권씨가 만든 원두막이 있다. 원두막 제작과 전문 영업을 병행한 사람으로는 그 당시 전국에서도 선두주자였지 않을까 여겨진다. 원두막 한 채를 만드는 데는 1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김종권씨는 보조 한 명만 있으면 혼자서 원두막을 지을 수 있다. 한창 원두막을 짓던 시절에는 한달에 한 채씩 만들어냈다. 똑같아 보이지만 고객의 주문에 따라 크기며 모양, 지붕의 재료도 달라 가격대도 700~1000만원까지 다양하다. 원두막의 재료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모두 함양산으로 주로 벌목하는 곳에서 구해 온다. 원두막을 지탱하는 4개의 기둥은 최소 70~80년에서 100년 된 소나무로 지름이 30cm 이상은 되어야 한다. 원두막 기둥은 목재로 쓸 수 없는 것이 가치있다. 울퉁불퉁하고 휘어져 못생긴 나무일수록 제 모양을 살리면 더 멋스런 원두막을 만들 수 있다. 제작한 원두막은 마지막으로 나무가 썩지 않도록 방수처리를 한 후 설치장소로 이동한다. 차가 못 들어가는 좁은 장소는 직접 가서 제작하지만 대부분 원형 그대로 운반한다. 원두막은 대형카크레인에 실어 운반해야 하므로 교통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로 새벽에 이동한다. 남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시각에 원두막을 설치하고 사라지면 어제 없던 집 한 채가 우뚝 서 있는 걸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신기해했다고 전해 들었단다. 원두막 짓기에 평생을 바쳤지만 이젠 수요도 점차 줄고 일도 줄었다. 손재주가 좋고 취미가 있다면 기술을 전수해주고 싶지만 젊은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니 쉽지 않다. 김종권씨는 “여기 전시돼 있는 원두막을 다 팔고 나면 이제 내 일도 없어지지 않으려나”라며 아련히 원두막을 바라본다. 김종권씨의 작품은 원두막 외에도 함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옛 시절 각 마을 버스승강장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바람과 비를 막아주던 나무로 된 추억의 승강장을 만든 장본인이다. 함양읍에서 마천, 휴천, 서상까지 모든 버스승강장은 김종권씨가 만든 나무 승강장으로 교체됐다. 하지만 이도 20여년이 지난 지금 플라스틱 의자로 바뀌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경치 좋고 위치 좋은 곳에는 정자를 만들고 어르신들의 쉴 공간에는 그늘이 되어주는 원두막을 설치했던 김종권씨. 몰라서 지나쳤던 그의 원두막은 함양상림숲에도 3개가 설치돼 있으며 하림공원에도 1개가 있다. 누군가의 작품으로 우리에겐 쉼터로 제공되었던 원두막. 꽃무릇이 필 무렵 상림의 어느 원두막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게 될 당신에게 김종권씨를 기억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