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사의 실력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데, 전문적인 풍수사를 하려면 최소한 법안法眼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1. 범안凡眼 혹은 속안俗眼산세의 형세를 매우 상식적으로 판단해 혈穴을 잡는 수준으로 이론적으로만 해박하고 실무에 어두운 ‘안방 풍수’나, 이론과 논리가 없이 자신의 경험에 의한 실무만 아는 ‘작대기 풍수’ 등을 일컫는 말이다. 마을마다 있는 동네 지관들 중에도 아직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의학에서 말하는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든다.’는 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2. 법안法眼체계적으로 풍수이론을 공부하여 혈을 잡는 육안肉眼의 경지에 이른 상태를 뜻하는데, 풍수 이론에 밝아 용龍, 혈穴, 사砂, 수水, 향向에 대한 이론적 무장이 충분하고, 간룡看龍과 장풍藏風에 대한 식견도 높고 나아가 수법에 따라 좌향坐向을 정확히 놓는 방법에도 익숙하다. 상당한 학식(형기론, 이기론)으로 현장에 잘 적용하는 술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풍수의 법술에 능통한 사람을 보통 ‘지관’ 또는 ‘지관 양반’이라 부르는데, 지관地官이란 조선 시대에 음양풍수학 과거 시험에 합격해 왕가의 능지陵地를 선정하는 일에 관여하던 관리이다. 풍수 실력은 있으나 지관地官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은 보통 ‘풍수’라고 불렀는데, 조선 시대에 지관地官이 되려면 한문에 능통해야 하고, 선배 풍수사를 쫓아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답사해야 했다. 3. 도안道眼법안法眼의 단계를 넘어선 것이 바로 도안道眼이다. 영력(도력, 고차원적 능력)을 바탕으로 땅의 기운을 읽거나 느끼는 경지를 뜻하는데, 개안開眼이라고도 하며 정법(책)에만 의지하지 않고 산세를 보아 진룡眞龍을 찾은 후에는 눈에 생기生氣가 응집된 혈穴이 완연히 들어오는 수준의 실력이다. 현대에 개안開眼으로 알려진 대표적 인물은 지창룡 선생이다. 태백산 근처에서 홀로 수도를 하다가 꿈에 증조부를 비롯한 여러 할아버지들이 나타나 책장을 넘기며 여실히 일러주어 3년 만에 개안開眼이 되었다고 전하는데, 서울과 대전의 국립묘지 터를 잡아 자칭 국사國事라 칭하던 사람이다. 알려진 것에 대한 진위 여부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4. 신안神眼도안道眼보다 한 단계 높은 경지인 풍수의 대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상, 파동)를 모두 꿰뚫어보는 경지(신통력, 신령한 힘, 신비한 술수)이다. 멀리서도 생기生氣가 응집된 혈穴을 정확히 잡아내는 풍수사의 실력을 뜻하기도 하고, 또는 풍수 이론이나 논리에 근거하지 않고 산매(山魅, 산의 정령)나 귀신의 힘을 빌려 혈처穴處를 척척 잡아내는 수준의 실력(귀신의 눈을 가졌다는 풍수사)을 뜻하기도 한다. 단 이 중에서 신의 힘을 빌린 능력은 오랫동안 지속적이지는 못할 수 있겠다. 고려 건국 시 태조 왕건의 왕사였던 도선국사, 조선건국 시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 명종 때의 이름난 지사였던 남사고, 철종 때의 정만인 등이 신안神眼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현대의 대표적인 신안神眼으로 자칭하던 육관도사 손석우는 땅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훤히 바라보이는 신안神眼이 열려 멀리서도 산에서 훈훈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생기生氣가 뭉친 혈穴을 정확히 잡고, 풍수지리서의 이론적 해석보다는 술수적인 능력으로 풍수에 해박하고, 또한 패철佩鐵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신묘하게 좌향坐向을 정확히 잡는다고 한다. 그는 전주 모악산에 위치한 김태서의 묘로 북한의 김일성이 재위 49년 만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언하여 적중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요즈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람들 중에도 자신을 신안神眼이라고 과장하여 스스로를 광고하는 것을 보는데, 의심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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