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세기의 물리학사를 들여다보면 참 흥미로운 점들이 많다. 자연과학도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시대적 상황이나 흐름이 학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또 학문적 결과가 인간사에 변화를 주기도 하면서 흘러왔음을 알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한 검증가능성을 전제로 체계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과학이 갖는 최대의 장점이지만 다양한 인간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머리 싸매고 하는 일이라 한 가지 현상을 놓고도 심지어는 극과 극으로 갈리어 다투며 경쟁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총성 없는 싸움이지만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절박한 싸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빛은 그 정체성에 대한 주장에 있어서 오랜 기간 동안 파동임을 주장하는 부류와 입자임을 주장하는 부류로 나뉘어졌는데, 그 논란의 초기에는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뉴턴이 입자설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그 생각이 우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초 토머스 영의 간섭 실험을 통해 빛의 입자성을 일거에 주저앉혔다. 이후 빛은 맥스웰의 전자기법칙을 통해 오늘날 이해하는 전자파임이 증명되었지만, 20세기 초 현대물리학이 태동하면서 걸출한 천재들에 의해 빛의 입자설이 다시 등장하면서, 파동-입자 이중성을 거치며 양자역학이 정립되었다. 결국 오늘에 이르러서는 파동성과 입자성은 정 반대의 대립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처럼 실재의 가능한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예는 매우 많다. 과학혁명의 시기 케플러가 천체 관측을 통해 발견한 행성의 법칙(타원운동)과 갈릴레이가 찾아낸 지표면 물체의 낙하법칙(직선운동)도 결국 중력이라는 같은 힘에 의해 나타나는 서로 다른 모습이었으며 이를 뉴턴이 종합했다. 우리 일상에서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서로 전혀 다른 물리적 개념으로 생각되어온 시간과 공간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통합된 시공간의 서로 다른 양면성임이 입증되었다.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 전기장과 자기장의 관계 등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과학사 전체가 거의 이와 같은 방식의 통합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사실을 통해 서로 다른 현상이나 대립하는 생각과 이론도 대체로 결국에 가서는 하나의 통합된 단일 현상이나 이론의 두 가능한 측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만물을 통합하는 ‘모든 것의 이론’의 후보로 불리는 양자 중력에 대한 연구가 물리학계의 중요한 주제가운데 하나인데, 이 분야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몇 가지 방식으로 다른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과학사를 돌이켜볼 때, 이 여러 방식의 주장 가운데 하나만 참이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처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두 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보완하여 완전한 단일 이론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인간의 일이며, 인간의 사고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느 곳이나 한 이슈에 대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생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된다. 오랜 시간을 거쳐 그 서로 다른 생각들이 우리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양면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단 조건은 서로 대립하는 여러 생각과 관점의 주체들이 얼마나 합리적이며 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반대 주장을 하는 세력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억지주장을 펴거나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중심에 둔 여러 생각들이 부딪힌다면 그 결과는 두 생각의 조화가 아닌 모두의 공멸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이 사회 여기저기를 둘러볼 때 합리적이고 진정성 있는 생각들이 부딪힌다고 보기가 어렵다. 체계적인 학문으로 우뚝 자리를 지키는 과학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