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 얼음이 얼고,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한낮의 따스함은 이미 봄이 된 듯 싶네요. 햇살이 좋아 마을 주변 나들이를 하였는데 벌써 냉이가 꽃을 피우고 있더라고요. 내친김에 봄내음 물씬 나는 냉이를 캐어 냉이국을 끓였는데 봄향기가 입안 가득 맴도는 느낌이 참 좋더군요. 한남마을 앞 강가에는 아지랑이 피어나고, 흘러가는 강물 소리도 청량감 있게 들리고... 봄이 찾아오니 겨울동안 움츠려있던 몸이 활력을 찾는 느낌이랍니다. 조금 더 있으면 햇살에 은빛을 반짝이는 물고기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을 듯 싶네요. 물 맑고 경치 좋은 엄천강을 끼고 있는 한남마을, 이곳에도 어느덧 봄은 찾아 왔나봅니다. 겨울의 엄혹한 추위가 싫어서일까요? 봄은 언제 맞이해도 반가운 느낌이네요. 되돌아보니 한남마을에서 봄을 맞이한 세월이 벌써 12년째가 되었네요. 한국에 처음 와서 아는 이라고는 하나 없던 12년 전 그해 겨울은 지독하게도 추웠었는데... 마음도 몸도 모두 추웠던 기억뿐이었던지 지금도 엄혹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저 반갑고 마냥 기분 좋은 마음이랍니다. 지리산자락의 한남마을은 네팔의 고향 마을과도 조금 닮았답니다. 험한 산세와 쉼 없이 흐르는 강물, 농촌스런 풍경들, 봄과 함께 찾아오는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과 꽃들, 그리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엄천강의 물고기들까지, 연세 많으신 부모님을 뵈러 언제쯤 또다시 고향에 한번 가볼 수 있을지... 경제적 풍요가 넘치는 한국과는 달리 아직도 네팔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지만 동화와도 같은 추억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봄이 찾아 오는듯한 행복의 풍요를 느끼게 한답니다.그래서 항상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이 그립답니다. 고향에 가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하지만, 한국에서와 같은 바쁜 일상은 구경조차 못하지만, 그래도 저는 고향이 좋고, 고향이 그립답니다. 한국에서처럼 빠름을 요구받지도 않고, 목숨을 걸고 사는 듯한 경쟁도 하지 않으며, 부자가 아니라고 해서 행복이 없다고 느끼지도 않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느림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평온을 느끼니까요. 가족과 함께 감자 몇 개 삶고, 소금티 한잔 나눠 먹는 소박한 삶. 몇 시간을 걸어서 감자와 쌀을 교환하여 돌아오는 산길에서도 아버지가 사 주신 사탕 하나에 행복이 넘치던 추억들. 하지만 이제는 이미 한국인이 된 나의 삶. 아이 엄마로서의 막중함 속에 아이들 미래를 걱정하면서 살아가기에도 여념이 없는 나날들. 봄이 온 탓일까요? 아니면 곶감 농사와 무말랭이 작업 등으로 그토록 바쁘게 지냈던 겨울이 지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긴 탓일까요? 고향도 그립고 여러모로 요즘 사색의 시간이 많아진 심정이랍니다. 잠시 봄에 취해 있는데 고향 부모님의 전화가 왔네요. 두 아이가 영상 통화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네팔 언어로 인사를 하고, 부모님은 손주들의 재롱에 웃음이 넘치는 모습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잊게 되고,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위로가 되네요.봄내음이 네팔에서 날아온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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