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입춘 때만 해도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팡팡 터졌는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논도랑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는데, 세상에~ 대설주의보라니? 지난밤 대설주의보를 발령한다는 안내 문자를 보고 나는 설마설마 했다. 한두 번 속았나? 구라청 예보란 도대체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번에도 결국 싸락눈이나 쬐끔 흩날리다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 뜨니 설국이다. 밤새 두꺼운 눈 이불을 덮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야홋~ 지리산 북동 기슭 엄천 골짝에 눈이 내렸다. 올 겨울 들어 첫눈이다. 매년 내리던 눈이 거짓말 같지만 올 겨울에는 여태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아무리 겨울이 따뜻해졌다지만 눈이 없는 겨울이라니...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다. 어쨌든 올해는 눈 없는 겨울을 보내게 되는 모양이다 하고 아쉬워했는데 드디어 눈이 내렸다. 늦긴 했지만 골짜기를 두껍게 덮은 하얀 눈을 보니 반갑다. 이 나이에 기다리던 연인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설렘이라니... 막상 눈이 내리면 모든 것이 힘들다. 더군다나 경사 급한 골짝 제일 윗집에 사는 나로서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을 아래까지 눈을 치우기 전에는 차가 움직일 수 없다. 오늘처럼 택배가 많이 나가야 하는 날에는 눈이 얼어붙기 전 길을 내야한다. 아침에 이불 개듯 눈 이불을 개킬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어 유감이다. 헐떡거리며 땀 흘리고 어렵게 눈을 치우고 난 뒤에는 다시 눈이 내리지 말아야 하는데 때로는 설상가상이다. 눈을 치우고 나면 다시 덮히고 또 치웠는데 또 다시 내려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선물용 곶감이 많이 나가는 설 대목에 눈이 내리면 비상이다. 고양이까지 나서서 눈부터 치워야 한다. 일기를 보니 오늘 내내 영하의 기온. 넉가래와 싸리비 챙기고 장화 신고 방한 장갑 끼고 팔을 걷어붙였다. 내 집 앞, 내 점포 앞 눈을 치우라는 친절한 함양군 안내 문자가 아니더라도 오늘은 택배 나갈 게 많아 아침 식전에 뜨거운 커피 한잔 마시고 눈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마을은 북향이라 눈이 잘 녹지 않는데다가 금세 얼어붙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아랫집까지만 해도 거리가 상당하고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넉가래로 눈을 밀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치우고 치우고 또 다시 싸리비로 싹싹 쓰는데 옷 안은 땀이 나서 여름이고 옷 바깥은 볼때기가 얼어붙는 겨울이다. 땀이 너무 나 껴입은 옷을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벗어 던지고 마지막엔 얇은 옷 하나 입고 부지런을 떨어 두어 시간 만에 길을 내었다. 눈을 치우는 동안에도 눈이 오락가락해서 걱정은 되었지만 큰 눈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부지런을 떨어 성공적일 때가 있고, 부지런을 떨었지만 헛수고일 때도 있다. 오늘 눈 치운 일은 후자다. 힘들게 눈 치운 뒤 오전 내내 택배 포장했다. 주말에 귀감 주문이 많이 들어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일기예보와는 달리 오후가 되니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 눈이 녹기 시작했다. 눈을 치우지 않은 곳까지 녹는 것을 보니 굳이 아침 일찍 땀 흘리며 허겁지겁 눈을 치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다지 억울하지는 않다. 모처럼 기다리던 눈이랑 놀은 셈 치면 된다. 헛수고는 했지만 겨울 아침에 운동 한번 한 것이다. 겨울이면 겨울답게 눈 치우며 땀도 흘려야 봄이 반가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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