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상림은 뭇 새들의 둥지가 되고 있다. 텃새와 철새가 뒤섞여 철따라 다른 얼굴을 내민다. 그중에서도 원앙과 큰오색딱다구리는 상림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귀한 새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정말 멋진 장소다. 숲에서는 붉은가슴흰꼬리딱새, 밀화부리, 호랑지빠귀, 후투티도 볼 수 있다. 천년교 수원지는 물새들의 식당 겸 놀이터이다. 물총새, 지느러미발도요, 쇠오리, 청둥오리 등 계절에 따라 다른 얼굴을 마주 보는 재미가 있다. 함양상림의 숲과 위천에는 어떤 새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 속살을 한 번 들여다보자. 상림 숲의 높은 가지 위에는 까치집이 많다. 대략 보아도 10개는 될 것 같다. 까치가 번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2월 중순쯤 까치 부부가 묵은 둥지를 고치는 것을 본다. 봄에 이사나 집수리를 하는 것은 우리네와 같다. 근처에 내려앉아 무척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갖다 나른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경계하듯 근처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한다. 집수리를 멈추지는 않는다. 까치는 지능이 높은 새로 알려져 있다. 높은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시야가 넓다는 것을 짐작한다. 사방이 뻥 뚫린 공간에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겠다. 한겨울이면 강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숲이 웅웅~ 울고 커다란 졸참나무 위에 까치집이 일렁인다. 집을 지을 때 바람의 영향은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끼를 키울 때 태풍이라도 만나면 얼마나 위험할까? 그래서 까치는 전봇대에 집을 짓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생물은 편안하고 안전한 삶과 후손을 위해서 목숨도 바친다. 멧비둘기는 숲의 조용한 은둔자이다. 겨울철 숲에서는 몇 마리씩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소리 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곤 한다. 봄이 되면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저 멀리 아득한 향수를 부르는 듯하다. 오래전 고향의 내음이 묻어난다. 그만큼 농경사회와 친근한 새이다. 낮게 깔리는 저음은 가까운 데서 우는지 멀리서 우는지 구별이 안 된다. 중앙숲길을 걸으며 멧비둘기 소리를 듣는다. 귀 기울여 보니 분명 숲 안에서 우는 소리인데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 이것이 혹시 보호색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까? 지난해 여름 상림 남쪽 운동기구 옆 커다란 느티나무에 멧비둘기 둥지가 하나 있었다. 세 갈래로 난 가지 사이에 얼기설기 나뭇가지를 얹어서 지은 집이다. 멧비둘기는 까치만큼 정성 들여 크고 촘촘한 집을 짓지 않는 것 같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장소이다. 순박하지만, 참 대담한 멧비둘기다. 새 중에는 나무 위에서 먹이를 구하는 종이 있는가 하면 땅으로 내려와 먹이를 구하는 종도 있다. 멧비둘기는 주로 땅으로 내려와 먹이를 구하는 편이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오랜 생활습관을 어찌할까. 살아가는 방법에 옳고 그름은 없더라도 모양새는 있을 수 있겠다. 겨울날 이팝나무 가지 끝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수컷 딱새 한 마리를 본다. 웅크린 모습이 동그란 공 같다. 딱새는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 딱딱딱 소리를 내면서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 자리를 뜬다. 조심성이 많다. 하지만 번식기에는 자신보다 큰 뻐꾸기 새끼를 키운다. 조심성도 좋지만, 분별의 눈을 뜨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 직박구리는 사계절 흔하게 볼 수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한 가을철이면 떼로 모여 요란하다. 2016년 윤노리나무 알알이 붉은 열매가 흐드러지게 열렸다. 왁자지껄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장관이다. 직박구리는 흔해 빠진 잡스러운 녀석이다. 그래서 가족이 번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새들이 가을철에 집단으로 대륙을 이동한다니 못난 얼굴이 다시 보인다. 텃새인 듯 텃새 아닌 직박구리한테서 모험 여행을 배운다. 물고기를 사냥하는 새의 부리는 길고 튼튼한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물총새와 검은댕기해오라기는 단단하고 무시무시한 맹수 같다. 왜가리나 백로도 만만찮은 부리를 지녔다. 구조와 형태는 같은 기능끼리 닮기 마련이다. 열매를 먹는 산새와 물고기를 잡는 물새의 부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평소에도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검은댕기해오라기는 여름 한 철 천년교 물이 떨어지는 보 아래에 자주 나타난다. 빠른 물살을 초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다가 재빨리 물고기를 낚아챈다. 민첩하고 다양한 사냥 능력을 지녔다. 물총새도 가끔 나타난다. 빛깔도 생김새도 수중 침투 능력도 유별나게 멋진 새이다. 왜가리는 오래 참기의 달인이다. 눈에 잘 띄는 바위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주특기다. 배를 채우고 나면 홀로 고독한 시간을 즐긴다. 느긋한 여유와 멋을 아는 족속이다. 나무를 안분지족의 현인(賢人)이라고 하지만, 왜가리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고행자 같다. 왜가리나 백로는 얕은 물가에서 서성이며 가만히 바라본다. 다리가 기니까 꼿꼿하게 선 상태에서 사냥할 수 있다. 물고기를 포착하면 긴 목의 스냅으로 사정없이 낚아챈다. 평소 생활에 불편할 텐데 목을 키운 이유가 있다. 물방울을 튀기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물총새나 맹수 같은 부리를 앞세운 검은댕기해오라기와 차이가 난다. 새들이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사람살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도 생존이 빚어낸 다양한 삶의 문화가 있지 않겠는가. 흰뺨검둥오리는 상림에서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새이다. 하지만 원앙과 달리 사람의 눈길을 많이 꺼린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가족도 가까이 오는 법이 없다. 이들은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꽁꽁 언 얼음 위에 50마리 이상 모여 있을 때도 있다. 몸은 잔뜩 웅크린 채 붉은 오리발 하나로 꼼짝없이 서 있는다. 야생의 겨울은 참 혹독하다. 인간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그 고난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봄기운에 따스한 볕이 들면 흰뺨검둥오리는 신이 난다. 웅크렸던 날개를 펴고 한바탕 물장구를 친다. 쏜살같이 달리기도 하고 물을 튕기며 빙빙 돌기도 한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솟구치며 날개를 훨훨 펼치기도 한다. 암수가 어울려 꽥꽥거리며 짝짓기를 준비한다. 2017년 8월 천년교 수원지는 물풀인 마름으로 가득 찼다. 흰뺨검둥오리들이 한 줄로 서서 마름 덤불을 해치고 나오는 모습은 예술적이다. 살아 움직이는 유연한 곡선의 운율! 무심한 삶의 행동이 그려낸 자연스러움이었다. 위천 수원지에 나타나는 논병아리나 물닭, 흰죽지는 깊이 잠수를 한다. 논병아리 한 마리가 물속에서 은빛 나는 물고기를 물고 나왔다. 홈그라운드를 휘젓는 솜씨가 감탄스럽다. 그 작은 체구로 물속이 생활 공간인 물고기를 어떻게 사냥할 수 있게 되었을까? 두렵기만 한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마음먹었을까?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생존에는 한계가 없나 보다. 논병아리는 주로 혼자서 물질을 한다. 당당하고 옹골차다. 잔잔한 수원지! 논병아리 한 마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물속으로 사라진다. 엄지 척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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