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보름이 다 되어간다. 새해 소망과 축복의 마음을 담아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행복했던 시간들이 어느새 빛바랜 사진처럼 멀어져 가는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하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복조리를 돌리거나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며 덕담을 나누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긴긴 겨울밤이면 팥죽을 쑤어서 나누어 먹으면서 이웃 간에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진보와 보수의 극심한 대립으로 한 집 안에서도 핏대를 세워가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볼썽사나운 꼴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휴대폰의 보급으로 게임이나 유튜브 영상에 빠져서 사는 바람에 가뜩이나 대화가 없이 냉랭한 판에 정치 문제까지 끼어들면서 보이지 않는 대립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회의 기현상은 정치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파 싸움의 폐해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못해 한심하기까지 하다. 물론 민주시민으로서 정부를 감시하고 각자의 소신대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작금의 사태는 누가 봐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다. 말에도 품격이 있는 법인데,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막말들을 쏟아낸다든지 상대방을 비아냥거리는 말투들이 범람하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 사회의 병폐가 극에 달했다는 진단이 결코 과하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공감 능력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으니 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잘난 세상에서 초등학생만도 못한 저속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낯이 뜨거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 성향에 따라서 수십만 명이 운집하여 그들의 정치선동에 좌우지되는 것을 보면 집단 최면 상태로 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옳고 그른 것도 소용이 없다. 대화와 타협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치인들이야 당리당략에 따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일반 국민들까지 패거리를 지어서 요동치는 모습을 보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열등감 때문일까? 아니면 치유되지 못한 내면의 상처 때문일까? 죽자 살자 달려드는 무리들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순하고 착하다는 우리 한민족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마치 개싸움을 하듯이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사람들에겐 할 말이 없다. 끝장을 보겠다고 덤벼대는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도 끝이 나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실망이 앞선다. 예의나 체면은 온데간데없고 감동이나 설득 대신에 선동만 난무하는 현실에서 치유와 화합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온갖 생채기로 홍역을 치르는 국민들만 불쌍해 보인다. 이유는 ‘다르다’와 ‘틀리다’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틀리다’에 대한 대처 방식의 미숙함 탓이다. 어쩌면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일 수도 있다. 차라리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나 한다면 그나마 위안이나 되겠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차이(差異)에 대해서 관대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이념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독선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와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을 정치나 종교나 사회에 대입해 보면, 우리는 모두 뜻을 같이 해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집을 짓지 못 한다면 겉으로는 정의를 외칠지라도 정의는커녕 사회 혼란만 가중시키고 말게 되는 것이다. 테트리스라는 게임이 있다. ㅏ모양과 ㅓ모양, ㅣ모양과 네모 모양을 잘 조합해서 빈 곳이 없게 만드는 게임이다. 긴 모양은 긴 모양대로 짧은 모양은 짧은 모양대로 오목한 모양이나 볼록한 모양이나 다 생긴 대로 무작위로 내려온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어느 것 하나 버려서도 안 되고 또 버릴 것도 없다. 적재적소에 맞게 방향키를 움직여서 끼워 맞추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테트리스 게임에서는 절대로 똑같은 모양만 내려오지 않는다. 똑같은 모양만 가지고는 게임을 진행 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차이 때문에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각자 자기 자리에 들어가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차이(差異) 때문에 차이는 사회는 공산주의 국가이거나 독재국가다. 차이가 오히려 빛을 발할 수 있는 사회, 2020년 한 해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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