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 깜짝이야~ 늦은 밤에 덕장에서 곶감 포장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나가보니 길냥이 서리가 밥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덕장 안에서 일하느라 몰랐는데 이 녀석이 오랫동안 이러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다리다 화가 나서 소리를 크게 지른 모양인데 혼자 온 게 아니다. 뒤에 조그만 새끼가 한 마리 따라와서 같이 울고 있다. (서리는 수컷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새끼를 달고 왔지?) 어쨌든 사료를 주니 서리가 허겁지겁 먹고 어린 새끼는 안 보이는 곳에서 한참 애처롭게 울고 있다. 나를 보고 겁을 내는 것이다. 다시 가까이오지 않을 것 같아 사료를 한 그릇 더 담아 어둠 속에 두었는데 새끼는 끝내 먹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길냥이 서리는 지금은 뚱냥이가 되었지만 지난 봄 처음 수리 밥 서리하러 왔을 때만 해도 등이 철사처럼 가늘었다. 데크에 있는 수리 밥을 몰래 먹다가 나를 보고 후다닥 도망가는 걸 내가 서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밥을 챙겨 주었더니 이제는 하루 두 번 아침저녁으로 꼭꼭 밥 먹으러 온다. 잠은 어디서 자는지 모른다. 시골엔 빈 집이 많이 있으니 어느 빈집에서 자는 건지 아니면 내가 엊그제 본 어린 길냥이처럼 소 축사 짚단 속에 들어가서 자는지 모른다. (엊그제 저녁 집으로 올라오다가 처음 보는 어린 길냥이 한 마리가 소 축사 짚단 속으로 쏘옥 들어가는 걸 보았다. 따뜻한 짚더미에 동굴을 내어 임시 거처를 만든 것이다.) 어쨌든 서리는 아침저녁으로 밥 때가 되면 어김없이 와서 밥만 먹고 가버린다. 어떤 때는 새벽부터 현관 앞에서 밥 줄때까지 앵앵거리며 잠을 깨우기도 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밥만 얻어먹고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는 녀석이 나는 상당히 유감스럽다. (야~ 밥값 해야지~ 그냥 가면 어떻해~) 그래도 처음엔 사료를 주고 내가 안 보여야 살금살금 와서 밥을 먹고 후다닥 가버렸는데 이제는 밥 먹을 때 내가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도 도망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직 나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어서 밥을 먹으며 힐끔힐끔 눈치를 본다. (내가 이 인간을 믿어도 될까? 겉보기엔 착해 보이긴 하지만 인간이란 워낙 믿을 수가 없어서리 말이야.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속담도 있다지 않아...) 길냥이 출신 수리는 지금은 집냥이 뚱냥이가 되었지만 지지난 가을 산책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등이 철사처럼 가늘었다. 어린 수리는 처음보는 나에게 겁도 없이 온몸을 치대며 엉겨 붙었다. 나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내심 기뻤다. 내가 만난 길냥이는 하나같이 내가 무슨 조폭이라도 되는 듯이 슬금슬금 피했는데 이 녀석은 어찌된 영문인지 마치 백년 만에 만난 애인처럼 나에게 왈칵 안기는 것이다. 나는 살짝 감격했고 녀석을 집에 데리고 와서 밥을 먹였고 지금은 가족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두 마리 고양이 서리와 수리는 별로 친하지 않다. 서열로 보면 서리가 위다. 수리가 밥을 먹고 있을때 서리가 다가오면 수리는 뒤로 물러선다. 서리는 얼굴 한쪽에 큰 흉터가 있어 인상이 조폭이다. 울음소리도 서리랑 비교된다. 수리는 고운 알토인데 서리는 테너다. 둘은 친하지는 않지만 전략적 동반자다. 시골에는 길냥이가 많은데 각자의 영역이 있다. 조폭같은 인상의 서리가 수리의 영역에 다른 침입자가 오는 것을 막아준다. 수리와 서리는 한국과 일본처럼 전략적 동반자이지만 서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서리가 수리를 보는 표정은 아베가 문재인 대통령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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