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사거리 파리바게트 앞을 지날 때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왔다.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떠오르고 땡그랑 종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하면 나는 찰스 디킨스가 쓴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을 떠올린다. 그러면 ‘아, 스크루지, 그 구두쇠 영감’하며 묘한 웃음을 짓는다. 왜냐면 스크루지에 버금가는 조선 천하의 구두쇠 자린고비 영감도 생각나기 때문이다. 고등어 자반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식구들과 밥을 먹을 때 자린고비 영감은 이렇게 외친다.
“예끼 놈! 밥 한 술에 한 번씩만 쳐다봐야지, 그렇게 줄곧 쳐다보면 너무 짜서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나중에 괜히 아까운 물만 잔뜩 들이켜게 되지” 짚신 한 짝도 아까워 맨발로 다닌다는 자린고비 구두쇠 이야기나 신발집 마누라가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닌다는 서양 이야기나 다 마찬가지로 구두쇠는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구두쇠는 부정적 인물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작은 것도 아껴 쓰는 근검절약의 모범적 인물이다. 구두쇠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받는 건 조금 과하다 싶다.
스크루지의 경우를 보자. 함께 장사해 온 친구 마레가 죽고, 마레의 장례식날에도 스크루지는 빈틈없는 장사 솜씨로 큰돈을 번다. 일 년 중에서 제일 즐거운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도 늙은 스크루지는 추위가 살을 에는 듯 하였지만 난로를 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조카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찾아와 집에 초대하는 것도 물리치고 기부를 요청하는 두 신사도 혀를 내두르고 헛되이 돌아간다.
그때 쇠사슬을 끄는 죽은 친구 마레의 유령이 찾아와 욕심의 포로가 되면 인생의 기회를 놓치고 후회한다고 말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치 있다고 말하며 앞으로 세 사람의 유령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처럼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형벌을 받게 된다고 알려 준다. 세 유령은 스크루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유령이다.
어린 시절 불쌍했던 소년인 자신의 모습을 본다. 성장하여 일하게 되며 자신과 약혼했던 아가씨가 결국 욕심 많은 자기와 결별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본다.
두 번째 유령은 마법의 향료를 보여주고 자신의 직원 보브의 집으로 데려가고 조카 집에도 데려가 그들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그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스크루지를 초대하고 싶어하고 좋은 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며 놀란다.
마지막 종소리가 끝났을 때 미래의 유령이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물건을 훔쳐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죽어서 누워있는 자신의 묘지를 보자 스크루지는 비로소 자신의 야박한 삶의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스크루지는 소년을 시켜 큰 칠면조를 사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보브네 집으로 보내고 수염도 깎는다. 스크루지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간다. 스크루지는 두 손을 뒤로 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간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오후에는 조카네 집을 찾아가서 정성어린 대접을 받는다. 이튿날 아침, 스크루지는 보브의 월급을 올려 주고 사무실에 난로를 피우게 한다. 세상을 사랑과 감사와 축복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제 2019 한해가 끝나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2020년의 새해가 솟아오를 것이다. 새해에는 스크루지처럼 새사람이 되어보자. 새사람이 되려면 먼저 새생각을 가져야 한다. 새해에는 새사람이 되어 남을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 이웃을 생각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함양산삼엑스포축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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