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계절이 되면 온 세상이 축제분위기로 변한다. 11월 말이면 백화점과 상점들은 트리와 장식으로 성탄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성탄의 축제를 즐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그 중 하나가 “왜 사람들은 성탄절을 기뻐하고 즐거워할까?” 우리는 성탄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런 기쁨과 즐거움에는 예수님의 생일이란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간혹 “성탄절은 성경에도 없고 예수님이 태어난 날도 아닌데 왜 지키느냐?”며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맞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탄생의 사건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고 지키게 되었다. 예수님의 생일인 성탄절 날짜에는 다음과 같은 유사한 우리의 경험들이 녹아있다. 필자에게는 90을 바라보는 외할머니가 계신다. 외할머니는 평생 타인을 위한 삶을 사셨다. 시집와서 어른들을 모시고, 자녀들을 키우시면서 힘든 삶을 사셨다. 어느 날 외할머니의 생신이라며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동안 외할머니는 생신 상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셨고, 생일이 언젠지도 모르셨다. 8·90이 넘은 어르신 대부분이 그러하듯, 여러 이유로 인해 호적상의 생일과 실재 태어난 날이 달랐다. 외삼촌과 이모들이 어느 정도 장성한 후 여러 상황을 종합해 한 날을 정하고 그 날에 외할머니의 생일을 차려드렸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생일 기념’의 날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성탄절은 “지금, 여기” 평화의 왕으로 이 땅(내 삶)에 오시는 예수님을 예배하는 날이다. 라틴어에는 “미래”의 뜻을 가진 단어가 두 개 있는데 futura와 adventus다. futura는 “과거→현재→미래”로 진행되는 시간으로서, 영어 단어의 future(미래)의 어원이 된 말이다. 또 adventus(오심, 도착), 즉 미래로부터 오고 있는 어떤 사건(무엇)이 현재의 우리를 규정하여 과거로 흘러가는 “미래→현재→과거”로 진행되는 시간이란 의미로 영어에 Advent(대강절, 도래, 출현), Adventure(모험)의 어원이 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futura의 “과거→현재→미래”의 구조로 성탄절을 이해한다. 이천년 전(과거)에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구유에 탄생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현재) 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한다. 그리고 앞으로도(미래) 예수님의 평화와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탄절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탄절의 반쪽만 이해한 것이다. 나머지 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adventus의 “미래→현재→과거”의 구조가 필요하다.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의 탄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과 승천으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다시 오시(미래)는 예수님의 약속이 오늘(현재)을 살아가는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우리는 그 새로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이 새로움은 지난 과거의 결과로 규정된 나를 새롭게 해석하고 해방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이천년 전 베들레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사는 것이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약속의 결정체이다. 이 사랑과 구원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동일하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경험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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