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햇 곶감 포장 첫날이다. 곶감 깎는 작업이 끝난 지 아직 보름이 안 되었지만 시월 말에 먼저 깎은 곶감이 벌써 맛이 들어 상자에 담을 때가 된 것이다. 벌써라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벌써랄 것도 없다. 일찍 깎은 것은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작업 첫날이고 포장할 것들이 많아 나는 눈 밝고 손 빠른 여자 놉을 두 명이나 불렀다. 제대로 하려고 하얀 위생복도 입고 위생모도 쓰고 곶감 상자도 필요한 만큼 미리 접어놓았으니 부족한건 하나도 없다. 이제는 잘 마른 곶감을 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른 아침 작업 전에 포장할 곶감 평가를 위한 시식을 했는데 곶감을 처음 먹어본다는 장미란 씨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딱 한마디 내 뱉는다. “나이스~“ 이 한마디에 나는 우쭐해지고 힘이 났다. 지난해에도 곶감이 잘되어 반응이 좋았지만 올해도 날씨 덕분에 곶감이 숙성이 잘되었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산삼 곶감같은 기능성 상품을 개발하여 시제품을 만들고 있기에 조심스런 기대도 하고 있다. 사실 내가 십년 넘게 곶감을 만들고 있지만 올해는 좀 특별한 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생애 전환기가 있듯이 농사에도 그런 비슷한 게 있다. 말하자만 올해가 나에게는 곶감 농사 생애 전환기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나는 곶감을 말려 그냥 지리산농부가 만든 맛난 곶감이오~ 하고 팔아오다가 올해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귀감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로고 디자인도 전문 업체 도움을 받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곶감연구회영농조합 법인 회원들과 함께 산삼곶감등 기능성 곶감 시제품을 만들고 있기에 올해가 더욱더 특별한 한 해인 것이다. 포장 작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내가 채반에서 잘 마르고 크기가 비슷한 곶감을 선별하여 저울에 올리면 눈 밝고 손 빠른 장미란씨와 연화양이 받아서 상자에 예쁘게 담는다. 올해는 설날이 지난해보다 열흘정도 빠르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담아야 설날선물 상품을 차질없이 준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기에 나는 오늘 곶감상자를 적어도 100개는 담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작업 첫날이라 이것저것 준비할 게 좀 있어 오전 참 먹을 시간까지 20상자를 겨우 담았는데 유감스럽게도 이게 오늘 작업량 전부가 될 줄이야... 느닷없이 집에 물난리가 났다. 오전 참을 챙기려고 내가 방에 들어왔다가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뭐지? 하고 소리가 나는 아들 방으로 갔더니 2층에서 창문을 타고 물이 떨어지고 있는데 소나기가 오는 거 같다. 하지만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싶어 나는 필사적으로 그리고 허겁지겁 원인을 찾는답시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에 올라가니 해가 안 드는 북사면에는 된서리가 하얗게 덮혀있고 해가 드는 동쪽 사면에는 서리가 녹아 촉촉하다. 서리가 녹은 물이 스며들어 떨어지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십여분 동안 떨어진 물이 한 대야나 되었기에 당연히 어딘가 배관이 터졌을 거라는 의심을 하고 계량기부터 잠궜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난 해 외벽 누수 공사를 해준 업체에 연락하니 배관이 터진 것 같으니 계량기부터 잠그라고 해서 그제야 그런가? 하고 계량기를 잠군 뒤 여기저기 물새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다락에 올라갔더니 다락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있다. 오늘 손 빠른 두 놉과 나는 곶감 포장하다 수해복구하느라 힘들고 고단하고 어리석은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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