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의 숲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숲길이고 하나는 물길이다. 상림의 숲길과 물길은 남북을 가로지르며 펼쳐진다. 숲길은 인간의 생활·사유 활동이 낳은 유·무형의 길이고 물길은 생명의 원천을 나르는 자연의 길이다. 상림의 두 길은 인간의 손길을 거쳐왔고 지금도 손길을 타는 중이다. 상림의 두 길에는 오랜 역사와 문화가 시대를 이어 흘러오고 있다. 북녘에서 개울을 따라 이어지는 중앙숲길은 예전에 버스가 다니던 도로였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나서도 한참을 버스가 다녔다니 충격적이다. 읍에서 병곡·백전을 잇는 이 도로(폭 4m 정도)는 일제 강점기에 천년숲 사이로 낸 것으로 보인다. 중앙숲길 동쪽으로 개울 건너 숲속에는 마을 주민들이 주로 다니던 오솔길이 있었다. 이 길은 숲을 통제하는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스쳐 간 흔적이 남아있다. 옛 향수에 젖은 주민들이 이 길을 걷곤 하기 때문이다. 옛적 생활습관으로 남아있는 행동이 이 숲에 들면 향수처럼 살아나는 모양이다. 숲속을 흐르는 개울은 농사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읍민들이 미역을 감고 물고기를 잡던 자연의 놀이터요,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지금처럼 개울가에 석축이 쌓여있지 않았다. 바위와 나무뿌리 사이로 자연스럽게 물길이 흘렀다. 그때 숲속 개울에는 자라, 메기, 갑각류 등 많은 물고기가 살았다고 마을 주민들은 전한다.상림 숲 안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은 도천마을 솔숲 아래에 있는 위천보에서 끌어들이고 있다. 이 개울의 물은 예전에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써 아주 커다란 역할을 했다. 50여 년 전에만 해도 군청 뒤쪽은 모두 논이었다. 이 논들은 모두 상림 가운데로 흘러온 개울의 물과 대덕저수지의 물을 이용해서 농사를 지었다. 이 개울은 예전부터 자연적으로 물길을 이루어 흐르던 것을 관리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숲 안에는 너른 선상지였던 옛 흔적으로 물이 범람하면서 흘렀던 골이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골들 중 하나가 지금의 숲속 개울이지 않을까 싶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물로 물레방앗간을 돌렸다. 이 물레방앗간은 숲의 북쪽 개울이 시작되는 ‘신거리’에 있었다. 숲을 따라 흐르는 개울 중간에는 기억에 남을만한 다리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숲 가운데 쯤 있었다는 철제 아치형 다리이다. 80~90년대 이곳은 사진 촬영을 하는 명소였다. 지금은 평평하고 굵직한 돌다리로 변해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유독 다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널 수 없는 이쪽과 저쪽을 이어준다는 것이 큰 이유일 듯하다. 염원의 상징이라고 할까! 다리는 길이라는 긴 여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할머니들은 어디에 새 다리가 생겼다고 하면 관광버스를 타고 가서 걸어본다. 다리 위에서 할머니들은 어떤 의미를 잇고 싶어 하는 것일까? 다른 하나는 사운정 뒤쪽 개울에 있는 금호미 다리이다. 이 다리의 이름은 최치원 선생의 금호미 전설에서 가져왔다. 1976년에 시멘트로 투박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전에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금호미 다리가 된 것은 장소성의 가치가 크다. 바로 곁에 제의와 생활 공간으로 중요하게 쓰이는 사운정이 있다. 의미가 큰 다리인 만큼 조형 예술적 의미를 이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조심스럽긴 하다. 상림의 숲길과 물길은 숲의 역사이기도 하고 사람의 문화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숲길도 물길도 변해왔다. 때에 따른 사정과 이유로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농경문화에서 관광의 문화로 흐름이 바뀌는 동안 숲길과 물길의 가치와 용도도 바뀌었다. 인간의 문화 속에서는 대상물도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가치를 읽는 눈이 필요하다. 길이란 무엇일까? 무척 생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물음이다. 길은 이곳과 저곳을 잇고 있다. 거기 목적이 있다. 사람의 길은 사물이나 관념의 운송수단이다. 저 너머 닿고자 하는 이상이다. 물길은 어떨까? 생명을 적시며 순환하는 진화이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며 바다로 간다. 물을 보면 세상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다고 했다. 나의 길은 무엇일까? 상림의 숲길을 걸으며 되새겨 보는 물음이다. 길 위에 윤동주의 시 하나 얹어 놓는다. 새로운 길 /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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