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때 시낭송대회에 자주 나갔다. 경남 지역은 물론이고 서울 부산 광주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을 다녔다. 무대의 주인으로 사회를 보는 것과 심사를 받는 출연자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사회를 볼 때는 내가 청중을 모시는 주인 입장인데 대회는 심사를 받는 을의 입장이라고 할까. 사회는 늘 먹는 일반식이라면 대회는 가끔 먹는 특식이다. 일반식은 만날 먹으니 익숙하지만 특식은 잘 안 먹어본 것이거나 가끔 먹어보는 것이라 낯설고 적응이 쉽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회가 훨씬 더 떨린다.
시낭송대회를 자주 나가다 보면 아는 얼굴이 많아진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이 대회 저 대회 자주 나가기 때문이다. 2001년인가 한 대회에 참가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회에서 거의 만난 얼굴이었다. 그들은 한 단체에 속해 있는 회원들이고 무리를 지어서 참가한 것이다. 그들은 무대에서 연습을 하며 의기양양한 분위기였다. 나도 틈을 이용해 무대에 올라갔다. 마이크를 잡고 연습은 못했지만 청중이 있다고 생각하고 무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눈 속에 무대를 집어넣으며 익숙하게 만들었다.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대회 시작 30분 전에 제비뽑기로 출연순서를 정했는데 하필 내가 1번이 되었다. 1번은 긴장이 많이 되고 떨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번호다. 하지만 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난 잘 할 수 있어. 빨리 끝내고 느긋하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구경하는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해 연습한 대로 차분하게 강약 조절하며 시속에 빠져 낭송을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다들 낭송을 잘하는 것 같아서 누가 최고의 상을 받을지 판단이 안 섰다. 그런데 그날 내가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광주에서 열린 대회였다. 무대가 넓은 곳도 아니었다. 먼 거리여서 버스를 타고 가니 겨우 시작 시각에 맞춰서 도착을 하게 되었다. 자연히 무대 한 번 서 보지도 못하고 바로 대회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많이 긴장이 되었고 결국 중간에 내용을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프레젠테이션의 대가인 스티브 잡스도 몇 주 전부터 현장에 찾아간다고 한다. 거기서 동선 하나하나를 체크하며 무한 리허설을 한다는 것이다. 역시 잘하는 사람은 스피치를 할 장소를 미리 파악한다. 미리 장소를 파악하니까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청중이 어떤 부류인지도 파악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이 대에 맞거나 좋아하는 말투나 의상으로 다가갈 수 있고 그들 수준에 맞는 내용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특히 행사가 있는 날 사회자로 가게 되면 적어도 두 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한다. 무대 위로 올라가서 마이크 테스트도 하고 청중이 앉을 자리를 내려다보기기도 하며 전체적인 장소를 마음속에 새긴다. 빨리 온 청중이 있다면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한 이야기를 본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하나씩 꺼내어 멘트에 보태는데 그럴 때는 반응이 아주 좋다.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무대장소에 미리 가보지 않아도 잘할 수 있고 청중이 누구든 빨리 적응해서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부의 사람들은 낯익은 장소가 편하고 낯익은 사람이 편하다.
무대에서 떨지 않고 편하게 스피치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부지런해져라. 청중이 누구인지 연령대는 어떻게 되며 노인인지 어린인지 청중에 대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라. 무대의 크기와 객석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알아야 된다. 익숙할수록 편하다. 편할수록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청중의 가슴에 나의 메시지를 훨씬 더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기에서 스피치 할 장소와 청중을 파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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