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덕장에 감을 거는데 웃음이 실실 나왔다. 자동박피기를 붙들고 감을 깎는 자리댁과 채반에 깎은 감을 주워 담으며 뒷손질하는 절터댁 몰래 실실 웃는데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좋은 일, 정말 즐거운 일이 생긴 것이다. 힘든 곶감작업이 스무날 넘게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 곶감 깎는 작업만 해도 열흘 이상 남았다. 시월 말에 깎아 먼저 매단 감은 곶감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곶감 깎기 작업이 끝이 나지 않으니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건장한 두 아들이 곶감 작업을 도와주어 힘든 줄 몰랐는데 올해는 두 아들이 취업을 하여 서울로 가고 자리댁, 절터댁과 함께 겨우 세 사람이 열 동이 넘는 감을 깎아내어야 하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무거운 감 박스를 하루에도 수억번씩 들었다 놨다 하고나면 허리고 어깨고 안 아픈 데가 없다. 그런데 가엾은 내 허리와 어깨를 지켜줄 힘센 역도 선수 같은 놉을 구한 것이다. 25키로가 넘는 무거운 감 박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올리는 30대의 힘센 여자를 보며 절터댁과 자리댁은 “장미란이다~ 장미란이야~”하고 수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이 농가 일손을 돕기 위해 재능기부를 하러온 것 같았다. 감을 깎다가 무른 게 나오면 양파 망에 따로 모아 감식초를 만드는 통에 던진다. 그런데 나는 한 망도 두 손으로 겨우 들고 끙끙거리며 나르는데 오늘 우리 집에 재능 기부하러 온 천사는 양손에 하나씩 들고 휙휙 날라 다니는 것이다. 절터댁은 “어디서 저런 사람을 구해왔실꼬?” 하며 감탄을 하고, 자리댁은 “저런 사람한테는 돈을 쓰도 항개도 아깝지를 않제~” 하며 거들었다. 지난 시월부터 나는 올해는 무조건 힘센 남자 놉을 한명 구하려고 마음먹고 수소문해왔다. 그런데 시골에서 더군다나 곶감을 깎는 농가에서 남자 일꾼을 구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도 없을 뿐더러 내가 곶감 팔아 지급할 수 있는 보수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곶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사라는 게 제 인건비 벌어먹기라 나도 내 몫의 인건비를 차지하기 위해 저질 체력의 몸을 혹사 시켜가며 바위 같은 감 박스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우리 집에서 십년 째 자동박피기를 붙들고 감을 깎아주시는 자리댁도 내일 모레면 팔순이고, 깎은 감을 뒷손질 해주시는 절터 댁도 칠순보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다. 해서 힘쓰는 일은 오로지 내 몫인데 이 열악한 상황을 반전시켜주는 구세주같은 천사가 나타난 것이다. 재능기부 외국천사가 한국말을 전혀 모르고 나도 천사 나라의 말을 전혀 몰라 살짝 당황했지만 다행히 천사가 영어를 조금 알아듣는다. 나는 말을 할 때 가능하면 쉽고 단순한 영어로 말하고 반드시 오케이? 언드스탠? 하고 확인을 하고 있다. 특히 오케이는 말끝마다 따라 붙는다. 한번은 감 상자를 차에 싣는데 내가 2단으로 쌓자고 하는 말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한다고 “메이크 투”라고 했더니 그 무거운 감 상자를 한 번에 두 개씩 들어 올리는 것이다. “오우~노우~ 원 바이 원~ 오케이?”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가 싶다. 나는 솔직히 야홋~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다. 왜냐면 나도 남자고 체면이 있으니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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