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불조심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누구나 따뜻한 불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조그마한 부주의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인적, 물적 손해를 입힐 수 있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70년대에 초등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난다. 겨울이 되면 화재 예방을 위해 마을에 있는 초등학생들이 밤에 모두 모여서 줄을 지어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외쳤다. “불 불 불조심, 불조심을 합시다! 성냥개비 하나가 우리 재산 다 태운다!” 한 학생이 앞에 가면서 선창을 하면 뒤따르는 학생들이 큰 소리로 따라서 복창을 하며 골목골목을 누볐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산에서 나무를 해서 난방을 했던 시절이라 거의 모든 집에서 성냥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종종 정말로 불이 나서 집 전체가 불에 타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라 순수한 마음에 정말로 불이 나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외쳤다. 어떤 때는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서 동네 어르신들께 시끄럽다고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그래도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까 그만둘 수가 없어서 초겨울에는 꽤 오랫동안 저녁마다 외치고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성냥을 사용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어린 우리도 겨울철에 밖에서 놀다가 추우면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지펴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조그마한 성냥을 많이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아마 “성냥개비 하나가 우리 재산 다 태운다!”라는 그런 구호를 외치며 화재에 대한 경종을 울렸던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삶의 환경이 놀랍도록 변했으며 지금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급속하게 변해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그런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만, 고령자들은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힘겹다. 그런데 우리 삶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빠르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면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은 하루 자고 일어나면 많이 달라져 있는데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옛날에 사용하던 그 성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신해서 더 편리하고 다양한 전기, 전자제품들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마다 겨울철에는 다양한 여러 가지 생활전기제품을 많이 사용한다. 단지 겨울철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전기는 이제 우리 생활과 뗄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문명의 이기는 대게 위험을 동반하게 된다. 우리가 생활하는 주변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위험들이 늘 도사리고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린 학생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불조심을 외쳤는데 지금은 시골 마을에서는 차가 매일 돌아다니면서 확성기를 통해 불조심을 거듭거듭 당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공 기관에서는 화재 예방교육과 화재 진압훈련을 매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소방서에서 소방점검도 자주 나온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관계기관에서 점검하고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경고와 심지어 처벌도 한다. 얼마 전에 제가 근무하는 학교 시설관리팀에서 필자가 사는 집 출입문 비밀번호를 물었다. 이번 소방점검에서 지적사항이 있는데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로 집 안 욕실에 있는 콘센트를 방수 콘센트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욕실에서 아침마다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기 때문에 요즘은 집마다 욕실에 콘센트가 다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그 콘센트에 있는 구멍으로 물이 들어가게 되면 합선이 되면서 잘못하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덮개가 있는 방수콘센트를 설치하는 것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보니 욕실마다 일반콘센트가 방수커버 콘센트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냥 콘센트를 교체했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건물이 건축된 지가 벌써 21년이 되었다. 그렇다면 화장실 콘센트의 화재위험을 제거하는데 20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20년 전에 방수커버콘센트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콘센트에 물이 들어가면 합선으로 인해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건축업자는 욕실 안에 일반 콘센트를 설치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늘 와서 소방점검을 하고서는 이제야 그것을 지적하면서 바꾸라고 하는 것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누구나 입으로는 쉽게 외칠 수 있지만 실제 삶으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가 보다. 매일 방송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적지 않은 경우가 조그마한 부주의에 의한 것임을 자주 접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안전불감증을 이야기하지만 머지않아 그런 현상들이 반복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쩌면 설마 하는 안이함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분주한 일상의 삶 속에 흘러 떠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로 빨리 바뀌어야 할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은 정체되어 있고, 그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빠르게 변하는 것은 아닌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욕실에서 만나기에 20년이 걸린 새로 교체된 방수커버콘센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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