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사람이 먼저’,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이라는 문구를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자동차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으로, 현대인들에게는 운전면허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오래다. 운전자는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보행자의 안전이 우선임을 기본 원칙으로 배운다.그러나 ‘사람보다 차를 우선’하는 교통문화나 행정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2020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라는 국제행사를 앞둔 함양군의 교통행정과 군민들의 교통문화 수준은 어디까지 왔는지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함양군의 현주소와 안전한 교통문화 의식 개선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① 함양군 교통문화 현주소② 함양군 도로 위 보행권 진단 ③ 안전한 교통문화 개선 방안 ‘사람이 먼저’라는 시대적 흐름 역주행은 모두에게 불행 안전한 보행권 인식·제도 확대‘보행권’은 사람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안심하면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자동차의 대중화로 도로 위 차량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보행인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보행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다. 지난 9월 스쿨존 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 군 사건으로 촉발된 일명 ‘민식이 법’이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민식이 법’은 스쿨존 내 무인 단속용 장비와 건널목 신호기, 과속 단속 카메라 의무화 등이 담긴 도로교통법 개정안으로 국회에 발의됐다. 이처럼 보호되어야 할 어린이나 노약자의 교통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면서 보행환경 개선 및 보행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이 모이고 있다. 또 최근 자동차전용도로를 제외한 도심부 제한속도를 시속 50km 이하, 이면도로는 30km로 규정하는 ‘안전속도 5030’ 시행이 부산을 시작으로, 상당수 지역에서도 심의를 거치고 있다. 경남도는 교통약자를 보호하고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6월 20일부터 10월 15일까지 함양군을 비롯한 도내 12개 시군을 대상으로 ‘도로교통시설 설치 및 관리실태’에 대한 안전 감찰을 실시했다. 이에 함양군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 시설기준 미준수 2건,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물 유지관리 미흡 4건, 도로점용(연결)허가 관련 4건, 공사관련 안전조치 미흡 2건 등 4개 분야에서 총 12건이 적발 됐으며 담당공무원 3명에 대해서는 주의 조치를 요구되기도 했다.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함양인가?도시보다 도로 개발이 더딘 농촌 지역이기도 하지만 함양군의 보행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더군다나 행정의 차량 중심적 사업 추진은 보행권 확보에 대한 갈 길을 멀게만 하고 있다. 함양읍을 예로 동문네거리를 중심으로 한 주요 간선도로와 학교 주변, 상림권, 위천변 등을 제외하고는 인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골목길은 주거 밀집 지역, 아파트로 통하는 길이 많아 사람들이 곳곳에 걸어 다니고 있으나 인도는 물론 보행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없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도로에 길을 점령하고 있는 불법주차가 줄을 잇는 탓에 도로를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엉켜 통행해야 한다. 인도가 있다하더라도 자전거, 오토바이는 물론 인근 상점 등에서 내놓은 무단 적치물로 보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 좁은 골목길에서 30km 이상 속도를 내어도 단속에 적발되지 않기 때문에 보행권 보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교통약자인 장애인이나 노인 등은 휠체어, 실버카 등과 같은 보조 기구를 이용해 보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안전한 통행을 보장받기 힘든 처지다. 지난 11월22일 오전 용평리 한마음병원 앞 골목에서 만난 주민 한모(68) 씨는 “이 근처로 병원이나 시장을 걸어서 오가는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달려오는 차들을 빨리 피할 수 없어 위험한 상황이 종종 목격된다”면서 “차량이 양방향으로 오가는 경우에는 차량과 보행자 몸이 스치듯 지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함양군에는 자전거 전용도로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일부 구간은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겸용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으나 자전거 이용객은 물론 보행자들도 사고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있다. ‘보행권’을 둘러싼 함중 회전교차로 갈등 함양군은 보행권을 둘러싸고 ‘남중 사거리 회전교차로 설치’에 대한 교육공동체와의 갈등을 빚어오고 있다. 군은 총 예산 85억여원을 들여 국도 24호선(위성초 뒷길)~함양중 교차로 구간도로를 3차로로 확장하고 함중사거리 회전교차로 1개소를 설치하는 등 ‘함양중·고 주변 도로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와 교육 당국에서는 학생들의 등하굣길 교통사고 위험 등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함양중 회전교차로 설치에 따른 보행권 확보를 위한 교육공동체’는 학생들의 안전한 보행권 확보를 주장하고 있다. 회전교차로는 일반적인 평면교차로에 비해 저속 주행을 유도하고 상충횟수가 적어 교통사고 발생빈도와 심각도가 낮아 안전성이 증대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와 인접한 회전교차로의 안전성에 관련해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보행자를 우선시하지 않은 통학환경 조성이다. 회전교차로의 경우 신호교차로와 달리 건널목 신호체계가 없어 차량이 멈추지 않는다. 또 학생들의 경우 속도 인지 능력이 떨어져 달려오는 차량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횡단하려는 경향이 있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학교 앞 도로 확장으로 인한 회전교차로의 회전 및 진입차로 수가 많아질 경우 학생들의 교통사고 위험률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함양군은 이러한 학부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열린 1차 주민설명회에서 철저하게 ‘차량 중심’으로 설계된 자료를 발표해 반발을 샀다. ‘함양중 회전교차로 설치에 따른 보행권 확보를 위한 교육공동체’의 한 학부모는 “7월 주민설명회에서 회전교차로 시물레이션에서도 오직 교통정체를 고려했으며 보행권이 우선이라고 말하면서 보행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 스스로 사업 검증의 부실함을 드러냈다”면서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는가 하면 이견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군청으로 찾아와 입장을 제출하라는 등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민원 업무처리 방식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교통흐름보다 보행환경 개선으로이후로도 군은 학부모들과의 소통이 이어지지 않은 채 추진 의지만을 드러내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행정 공무원 성과 위주, 주먹구구식 사업 추진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군은 ‘함양중·고 주변 도로환경개선사업’추진을 지난 1차 설명회에서 2020년 8월을 준공 목표로 했다가 2021년 12월로 변경했다. 또 회전교차로 내외 교통 CCTV설치, 고원식(방지턱) 횡단보도 설치, 횡단보도 야간 투광기, 보행자 우선·속도제한 표지판, 안전펜스 등 보행자 안전대책을 설명회 자료에 추가했다. 하지만 이런 시설물들이 추가설치 되면 어느 정도 사고율을 낮추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전한 보행권 확보를 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게 학부모들의 우려다. 또 학교와 인접한 회전교차로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진입차로수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회전교차로와 도로 확장에 따른 차량 증가, 등원시간과 출근시간이 겹쳐 위험 요소를 오히려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함양군이 대안으로 제시한 다중안전시설물 설치로 보행자의 안전한 보행 효과가 높다면 회전교차로가 아닌 평면교차로에서도 당장 도입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행정에서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한 대목이다. 학교와 인접한 교차로일수록 어린이 보행자의 이동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며, 보행자에 대한 설계적 고려를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행권 확보를 위해서는 교통의 흐름보다 자동차들이 안전하게 운행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도로 시설이 갖춰져야 하며,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시 하는 운전문화가 정착이 되어야한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면 함양의 미래도 군민의 행복도 담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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