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음반을 주문했다. 브루크너와 말러 교향곡 전집인데 가격이 생각보다 싸서 놀랐다. 새 상품을 중고가로 구입한 기분이다. 물론 비싼 음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제일 저렴한 걸로 주문했다. 이 음반은 내가 승용겸 화물용으로 타는 트럭에서 들으려고 하는 거다. (우리 집에는 오디오 전문 기기가 없고 음악은 라디오나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듣는다.) 내가 고딩 때 우리 집에 브루크너와 말러 교향곡 1번 음반이 있었기 때문에 두 작곡가의 1번 심포니는 귀에 익었다. 특히 말러의 1번 심포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십 몇년이 흐르는 동안 나에게 있어서 브루크너와 말러는 1번 교향곡의 작곡가로만 존재했고 2번 3번...9번,(10번) 교향곡이 있으며 그것들이 1번만큼 또는 1번을 뛰어넘는 곡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에게 브루크너와 말러의 음악은 사실 어려웠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브루크너의 4번 심포니<로맨틱>이라도 흘러나오면 아내는 브루크너 음악은 항상 빰빠라빰빰만 한다고 고개를 설레설레했고 나도 그렇치 그렇치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나는 틈이 나면 브루크너와 말러(이하 브루말러)의 심포니를 듣고 있다. 계기가 있었는데, 우연히 선물 받은 유선 해드폰 덕분이다. 나는 요즘 거의 매일 선물로 받은 성능 좋은 해드폰을 끼고 브루말러의 심포니들을 듣는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브람스 등등의 음악이 정원에 피는 장미나 모란처럼 우리가 잘 아는 꽃이라면 브루말러의 음악은 에베레스트나 알프스산 깊은 곳에 피는 이름도 생소한 야생화다. 특히 브루크너의 음악은 음악적인 기교가 없고 높고 깊은 산의 장엄한 풍경 그대로를 보는 것 같다. 음악을 만들었다기보다 자연과 신의 노래를 그냥 받아 적은 것이 아닐까 싶다. 브루크너를 좋아하는 사람은 브루크네리언이라고 하고 말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말러리안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브루말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브루말러리안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나는 간밤에 잠이 안와 해드폰 끼고 (수면용으로)말러를 듣다가 말러리안이 되었고 같은 이유로 브루크너를 듣다가 브루크네리언이 되었다. 브루말러의 심포니는 워낙 스케일이 있다 보니 오디오 시설이 제대로 된 공간에서 들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시골 농부가 오디오 기기는 언감생심이고 스맛폰에 해드폰을 연결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내 인생에 색채를 더 해주는 브루말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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