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사람이 먼저’,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이라는 문구를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자동차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으로, 현대인들에게는 운전면허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오래다. 운전자는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보행자의 안전이 우선임을 기본 원칙으로 배운다.그러나 ‘사람보다 차를 우선’하는 교통문화나 행정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2020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라는 국제행사를 앞둔 함양군의 교통행정과 군민들의 교통문화 수준은 어디까지 왔는지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함양군의 현주소와 안전한 교통문화 의식 개선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본다. / 편집자 <글 싣는 순서>① 함양군 교통문화 현주소② 함양군 도로 위 보행권 진단 ③ 안전한 교통문화 개선 방안 차량 중심 교통문화‧행정 “보행자 안전 위협” 다수의 운전자들은 안전운전에 방점을 두고 도로를 주행한다.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문화를 선진교통문화로 통칭한다. 그렇다면 우리 함양은 어떤가? 행정과 더불어 운전자마저도 교통약자인 보행자 보다는 차가 우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일부 운전자들의 잘못된 운전형태겠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에게 재촉하듯 경적을 울리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도 많다. 보행자는 운전자의 눈치를 보며 도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건넌다. 특히 교통약자인 노인,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위협 받고 있는 것이다.횡단보도 천천히 건넌다고 ‘빵빵’ 출퇴근 시간에 가장 많은 교통정체가 일어나는 함양읍 함양중학교앞 사거리. 함중사거리로 통하는 주변도로에는 무신호 횡단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또 횡단보도 주위로 주정차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어 보행자가 운전자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곳을 지켜보면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길을 건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11월14일 오전 함양읍 교산리 한전 인근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한 시민이 차량을 피해 허겁지겁 도로를 건넜다. 가방을 맨 학생들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한참을 서성였지만, 줄지어 오는 차량들이 좀처럼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보행자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보행자 신호등이 있는 동문네거리 횡단보도에서는 초록불인 신호에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우회전 하는 차량은 보행자 앞까지 다가가 걸음을 재촉한다.이날 만난 읍민 김모(72) 씨는 “보행자 도로에서도 사람들이 알아서 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며 “달리는 차량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양보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매번 위험을 많이 느낀다”고 토로했다. 횡단보도 앞에는 차량 정지선을 표시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하게 만들어 두었다. 또 ‘정지’라는 글자를 새겨 둔 곳도 있다. 이 처럼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우선으로 하는 규칙을 도로 곳곳에 새겨 두고 있다. 그러나 함양군에서 이러한 규칙은 유명무실이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넘어서 정차하는 것은 물론,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신호를 대기하는 차량도 쉽게 볼 수 있다. 보행자를 양보하기 위해 앞차가 조금이라도 지체한다 싶으면 뒤따라오던 차량은 여지없이 경적을 울려대고 위협적으로 다가선다. 교통약자들에게 더 위험한 도로이러한 운전자의 시민의식은 특히나 교통약자들에게 더 위협적이다. 스쿨존으로 지정되어 있는 함양초등학교 뒷문에는 매일 교통안전 지킴이가 등하굣길을 지도하고 있다. 이 횡단보도 또한 신호등이 없어 교통안전 지킴이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붙잡고 신호등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6년째 함양초등학교에서 교통안전 지킴이를 하고 있는 이재술(70) 씨는 운전자들의 나쁜 운전습관 때문에 매일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제한 속도 30km를 무시하고 아이들이 건너는 상황에도 일시정지를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학부모, 학원차량 등이 보행자 거리에 정차하고 있는 문제도 심각하다.이재술 씨는 “차량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 깃발을 들고 일시정지 표시를 보내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위험한 상황도 허다하다”면서 “이 주변에는 함양군청을 이용하는 차량들의 교통량이 많기 때문에 사고 위험률이 높다”고 전했다. 지난 8월에는 함양읍 함양성당 앞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자동차 범퍼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함양경찰서 생활안전교통과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6년~2019년) 함양지역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교통사고는 모두 14건이다. 이 밖에 2주 미만의 경미한 사고의 경우 당사자간 합의를 통해 정식 사고로 접수되지 않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함양경찰서 관계자는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배려하는 운전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며 “특히 어린아이나 노인의 경우 주의력이 떨어져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으니 어린이 보호구역이나 노인 보호구역에서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운전자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 도로교통법 제27조 1항에서는 ‘모든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 통행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하지만 운전자가 되는 순간 교통 체증은 불편함과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많은 운전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보행자를 재촉하며, 차량 중심적 운전문화가 보행자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운전자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을 상기하며 보행자 중심의 선진교통문화를 확산시켜나가야 한다. 유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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