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집에 고양이 한 마리 들어오자 모든 게 달라졌다. 지난 가을이었다. 어느 날 저녁 베란다 창으로 거실을 들여다보니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뭐지? 고양이가 왜 집안에 있지? 고양이는 아주 어려 보였는데 마치 제 집이라도 되는 냥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소파에 기대어 독서를 하는 주인님의 산(똥배)위로 슬며시 올라가 앉았다. 거대한 동산에 식빵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주인님은 책에 빠져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안돼~ 오디와 나는 정말 겁나게 짖었다. 방음이 잘 되는 거실 창이었지만 워낙 큰소리로 짖어대니 주인님이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주인님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그 버르장머리 없는 고양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품을 하고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결코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지리산 엄천골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 집은 17년 전에 지어졌는데 4년 전 내가 입양되기 전까지 다섯 마리의 잘생긴 스파니엘과 콜리가 살았다. 그런데 내가 입양될 즈음 모두 나이가 들어 제갈 길을 갔다. 그리고 고양이는 한 번도 키운 적이 없는 우리 집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들어온 것이다. 거만하고 지저분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어쨌든 그 녀석은 수리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수리취떡 상표가 붙은 종이박스를 보고 주인님이 즉흥적으로 지어준 천한 이름이었다. 반면 사랑이라는 내 이름은 주인님이 한 달 이상 심혈을 기울여 지은 이름이다. 자랑같이 들리겠지만 주인님은 내 이름을 짓기 위해 SNS에 공모까지 했다고 한다. 고양이는 가시를 숨긴 배반의 장미다. 천성이 간사하고 도벽이 심하며 사회성이 없는데다 게으르기까지 하다. 고양이가 들어오고 나서 나와 오디가 찬밥이 되었다고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런 쓸모없는 고양이를 주인님이 왜 데려온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와 오디는 엄동의 겨울을 바깥에서 살았는데 수리는 거실 벽난로 앞에서 드러누워 주는 밥 먹고 노끈이나 종이쪼가리나 찢어발기며 놀았다. 개는 힘들게 바깥에서 추위와 싸우며 집을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 집은 산 아래 집이고 담장이 없어 멧돼지나 반달곰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게다가 쓸데없는 사람도 많이 들락거린다. 나는 산짐승들은 물론이고 낯선 사람이 보이면 겁나게 짖는다. 그런데 수리는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전혀 짖지를 않는다. 하다못해 냐옹도 하지 않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인 것이다. 고양이의 타고난 천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리 이 녀석은 도무지 위아래가 없다. 주인님이 부르면 나는 꼬리를 흔들며(어떤 때는 엉덩이가지 흔들며) 달려가서 고개를 숙이는데 이 건방진 똥떵거리는 들은 채도 안한다. 주인님이 수리야~ 하고 부르면 당연히 냐옹~하고 달려가야 하는데 하늘만 멀뚱멀뚱 쳐다본다. 도무지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가 되어 고양이 군기를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가만 내버려두면 이 버릇없는 녀석은 꼭대기에 올라가 주인님을 아예 집사로 부려먹는다. 수리도 이제 한 살이 되었다. 그동안 수리는 잘 먹고 잘 자라서 허리를 활처럼 휘고 털을 세우면 키가 나와 맞먹는다. 처음엔 내가 근처만 가도 감나무 위로 도망치던 녀석이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평화로웠던 집에 수리가 들어와 모든 것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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