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어쩔 수가 없다. 수리는 귀족냥이다. 수리는 나와 같은 길냥이 출신이지만 B.C(Before CatSuri)1년 전 약관 3개월의 나이에 자수성가하여 냥작 작위를 받고 집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길냥이가 집사를 거느리는 귀족냥이가 되는 예가 없지는 않지만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이란 원래 교활하고 신뢰할 수 없는 종족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인간을 집사로 고용하고 보살펴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리에게는 눈빛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내가 지켜 본 바 수리는 눈으로 집사를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입이 심심할 때 수리는 슬픈 눈을 치켜뜨며 냐옹~한다. 그러면 집사는 우왕좌왕하다가 츄르 1포 대령한다. 이거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한번은 나도 수리의 집사에게 슬픈 눈을 뜨고 냐옹~했더니 “이 녀석이 왜 이리 시끄럽게 굴지? 밥 잘 얻어먹고~”하며 사팔뜨기 보듯 하는 거다. 같은 치즈테비 기성복을 입었는데 수리는 정장을 입은 듯 빛이 나고 나는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은 것 같다. 나는 걸을 때 어깨를 낮추고 좌우를 살피며 샤사샥 걷는데 수리는 꼬리를 빳빳하게 치켜세우고 앞을 보며 당당하게 걷는다. 나랑 수리가 같이 걸으면 완존 춘향전이다. 영락없는 방 자와 이몽룡이다. 몽룡이를 처음 만났던 날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까지만 해도 나는 ‘한끼줍쇼’ 출연냥으로 엄천골짝 이집 저집을 두드렸다. 냥이 발에 땀이 나도록 걸었지만 출연료도 없는 힘든 보급투쟁의 나날이었다. 엄천골은 B.C(Before Catsuri) 67년 빨치산이 보급투쟁 했던 고을로 알려져 있지만 나랑은 아무 관련이 없다. 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그냥 ‘한끼줍쇼’였다. 그날 나는 골짜기의 어느 농가 앞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수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처음엔 한참 갈등했다. 수리는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나보다 덩치가 확실히 컸고 분명 힘도 세어 보였다. 괜히 어설프게 보급투쟁에 나섰다가 한방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배를 긁어도 등이 시원할 정도였다. 눈앞에 밥이 있는데 포기할 수가 없었다. 구겨진 용기를 펴고 밥그릇을 향해 결연하게 나아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자기 밥을 양보하고 뒤로 물러서서 내가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빈 그릇을 싹싹 핥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수리를 수발하고 있는 집사가 양 손에 밥을 한 그릇씩 들고 나타났다. 한 그릇은 수리, 또 한 그릇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비록 믿을 수 없는 인간이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 다시 또 한 그릇 먹었다. 하지만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모처럼 배를 채우고 떠나는데 수리가 나를 쫄쫄 따라왔다. 나는 무시하고 나의 은신처로 갈 길을 가다 슬쩍 뒤돌아보니 수리의 두 눈에 외로움의 촛불이 일렁이는 것이 얼핏 보였다. 수리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수리의 친구가 되어 한가하게 노닥거릴 형편이 되지 못한다. 삶은 고단하고 장난이 아니다. 비록 요즘 내가 수리네 캐슬에서 밥을 먹고는 있지만 덕분에 근육이 좀 붙기는 했지만 인간이란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종족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긴장해야 한다. 삶은 수리수리마수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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