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이제 은퇴할 때가 돼 무료한 일상을 보낼 나이다. 하지만 이곳에 오니 정말 할 일이 많다. 힘들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다. 30년은 젊어진 것 같다.” 오랜 기간 도시와 해외생활을 하다 귀국한 뒤 시골살이의 꿈을 현실로 옮겼다. 육체적 고단함 보다 하루하루 배워가는 농사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함양새댁’ 부부의 귀농 2년차 초보농부 이야기다. 귀농·귀촌인들을 위해 2018년 경남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함양군체류형농업지원센터 1기생 출신으로 유림면 우동마을에 새로운 삶터를 마련한 유원준(57)·김명숙(51) 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싫어한다. 대부분 부모뻘이지만 모두 행님(형님), 언니라고 부르라하고, 어르신들은 우리더러 ‘새댁’이라고 불러 30년은 젊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이런 호칭이 어색했으나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며 “행님, 동생 하면서 지내다보니 더욱 친밀해 진다”고 했다. 유원준 씨 부부는 15년 동안 인도에서 무역업을 하다 2017년 귀국했다. 귀국 후 본격적으로 귀농에 대한 정보수집에 나섰다. “때마침 서울에서 귀농귀촌박람회가 열려 박람회장에서 함양군체류형농업지원센터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센터에 입주하게 됐다”고 한다. 유 씨는 합천군 용주면에서 태어나 여덟살에 온 가족이 서울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마음껏 뛰놀던 시골생활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김명숙 씨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시골생활은 난생 처음이다. 당연히 농사일도 낯설다. 유 씨 역시 어린나이에 시골을 떠나 농사일이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귀농 첫해부터 양파, 감자, 고추, 고사리, 콩, 들깨, 벼, 마늘 등 여러 가지 농사를 두루 지었다. “모두 좋은 이웃을 만난 덕분”이라고 했다. “체류형농업센터에서 귀농귀촌 교육을 받은 것도 도움은 됐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부딪혀 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는 이들 부부는 “주말이나 센터 교육이 없는 날은 일손이 부족한 농장을 찾아 일손을 거들면서 용돈도 벌고 농사일도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민들과 가까워졌다. “서툴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좋게 봐 주신 것 같다. 유림면에 딸기농장 견학을 왔다가 농장주 형님이 바로 귀농할 집을 구해 줘 이곳에서 터를 잡게 됐다”고 한다. 거처가 해결됐으니 이제 농사지을 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 또한 집에서 가까운 장항들 옥토를 선뜻 임대해 주었단다. 지난해 9월 논 2400평으로 시작해 지금은 논 3900평에 밭 700평 등 모두 4600평(1만5000㎡)으로 늘었다. 논 밭이 늘면서 농사짓는 작목 수도 자연히 다양해졌다. 논 밭을 임대해 준 소유주는 물론, 동네 사람 모두가 이들 부부의 멘토이다. 모든 노하우를 서슴없이 가르쳐 준다. “다른 사람에게는 잔소리 같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초보농사꾼인 우리 부부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일이다”고 했다. “동네 주민들 덕분에 귀농 후 첫해 농사를 제법 그럴싸하게 지었다”고 자랑한다. “모든 게 처음이지만 우리 동네에서 올해 양파농사를 제일 잘 지었다는 칭찬도 들었다. 고추도 250근이나 수확했다”면서 으쓱해 보인다. 유 씨는 “올해 양파농사를 잘 짓긴 했지만 가격이 폭락해 오히려 손해를 봤다. 덕분에 농사만으로는 위험요소를 피하기 어렵다는 농촌의 현실을 빨리 실감하게 됐다”면서 “우선은 차근차근 농사일을 배우는 데 주력하고 어느 정도 농사일이 익숙해지면 가공과 유통, 나아가 수출까지 연계해 보겠다”고 한다. 유 씨는 “지리산이 인접한 이곳은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영화(1992년 작)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을 떠올릴 만큼 주위 풍광도 아름답다”며 “조금 여유가 생기면 산과 강, 꽃길이 아름다운 우동·화계·장항마을을 하나로 묶어 문화 관광형 마을로 발전 시켜 보고 싶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아내 김명숙 씨는 자신들의 좌충우돌 귀농이야기를 블로그 ‘함양새댁’을 통해 수시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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