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는 길냥이다. 가끔 나타나 내 밥을 서리해 먹는 걸 보고 집사가 붙여준 이름이다. 나쁜 뜻은 없다. 왜냐면 고양이가 서리를 하는 것은 생계를 위한 정상적인 직업 활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서리를 잘 하는 냥이를 보면 감탄을 하지 절대 비난하지 않는다. (햐~ 고 녀석 정말 솜씨가 좋네~ 내가 꺽지 큰 거 세 마리 구워 먹으려고 수돗가에서 손질까지 다 해 놓고 왕소금 가지러 간 사이에 감쪽같이 물어 가버렸어~) 이렇게 솜씨 좋은 냥이에게는 찬탄을 한다. 하지만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만일 어설프게 서리하다 들키기라도 하면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는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도 듣게 된다. 집사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도 서리를 한다. 부모는 자식들이 서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시범을 보이고 가르친다. 훔치는 일을 몸으로 익혀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크게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서리를 하다 잡히면 조롱받는다. 야구 선수는 잘 훔칠수록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된다. 방심한 틈을 노려 기회는 찬스다 하며 2루 3루 심지어는 홈도 훔친다. 정치 선수도 길냥이처럼 능숙한 솜씨로 양심을 훔치고 무슨 무슨 위원장이나 국회의원이라는 지도자가 되지만, 어설픈 솜씨로 훔치다가 들통이 나면 뉴스에 오르내리고 개망신을 당하고 개처럼 묶여 주는 밥만 먹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아주 운이 나쁜 경우이고 대부분의 지도자는 솜씨가 좋고 달변이다. 어떤 지도자는 들통이 나도 의리있는 동료의원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아 끝까지 부인하고 달변으로 위기를 극복해서 더 존경받는다. 내가 보기에 서리는 솜씨가 없다. 서투른 솜씨로 서리하다가 여기저기서 조롱거리가 된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서리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걸려 지금 힘든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 집사는 서리가 보일 때마다 밥을 두 그릇 주는데 서리는 웬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증상이 심한 것이다. 서리는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한다. 나는 서리에게 사람도 너처럼 서툰 서리꾼이 있지만 모두들 당당하게 아니 오히려 더 잘 묵고 잘 살고 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집사를 간택하라고 충고를 해주었는데 서리는 안 좋은 기억을 떨치지 못한 채 골짜기를 떠돌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여담으로 하는 건데 사실 위에 말한 소금구이하려다 사라진 꺽지 3마리는 서리가 물어간 것이다. 집사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사는 자신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라며 서리를 탓하지는 않았다. 수돗가에 맛난 꺽지 3마리가 날 잡숴줍쇼 하고 있는데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느 고양이가 사양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사실은 나도 한 마리 얻어먹었다. 꺽지 회는 정말 맛있었다. 서리는 정말 좋은 것이다. 집사도 어린시절 수박서리 살구 서리 해먹은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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