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버지, 어머니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게를 할 때부터 단골이셨던 손님도 있다.” 함양군 전통시장의 상징인 지리산함양시장 내 전주상회(함양읍 용평4길 9-11)는 50여년 가업을 이어온 노포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리산함양시장이 생기기전부터 이곳에서 노점상으로 시작한 것을 더하면 60년이 넘었다. 지금은 며느리 소영임(66) 씨와 손자 최규화(39) 씨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최 씨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63년 전 홍수피해를 입고 빈손으로 전주에서 함양으로 이주하셨다. 먹고 살기 위해 이곳에서 노점상을 했던 것이 전주상회의 시작이었다. 전통시장이 들어서면서 점포를 마련해 전주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했다”며 전주상회의 내력을 들려준다.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주분이어서 가게 이름도 전주상회라고 지은 것”이라고 했다. 소영임·최규화 씨 모자(母子)는 매일 오전7시부터 오후7시까지 하루 12시간 가게 문을 연다. 매월 셋째 주 일요일이 한 달에 유일하게 쉬는 휴업일이다. 이마저 장날과 겹치면 문을 열어야 한다. 아들 규화씨의 일과는 이보다 일찍 시작된다. 새벽 5시 이전에 일어나 진주로 가 그날 판매할 물건들을 구입해 점포에 상품을 진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귀찮고 번거롭기는 하지만 신선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전주상회의 배려이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광주의 도매상을 통해서도 매일 납품 받고 있다. 전주상회는 채소가 주요 판매 상품이지만 다양한 건어물과 냉동식품도 함께 판매한다. 취급하는 상품의 가지 수가 하도 많아 40년 넘게 이 일을 하는 소영임 씨도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어림잡아 100가지는 넘는다. 채소나 건어물, 냉동식품은 거의 없는 게 없다”고 했다. 소 씨는 결혼 후 15평 남짓한 점포 안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차려 생활했다. “20년 동안 단칸방에서 아들 딸 삼남매를 낳고 키웠다. 남편과 시부모를 도와 함께 장사도 했다. “한창 바쁠 때는 얘들을 업고 물건을 팔았다”며 고생담을 털어놨다. “1970~80년대 학생이 많았을 때는 운동회나 소풍 가는 날 전에는 김밥 재료를 사기 위해 손님들이 긴 줄을 섰었다. 지금은 소풍을 가는지 운동회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한산하다”면서 “채소는 별로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오랜 단골들과 거래하는 식당들이 있어 먹고살 정도는 된다”고 했다. 전주상회는 읍내 60여 개 음식점과 거래한다. 단골거래처는 배달 주문을 하기도하고 직접 가지러 오기도 한다. 음식점이 바쁠 때는 단돈 만원어치라도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최 씨가 어머니를 도우며 3대째 가업을 이은 지도 벌써 12년이 됐다. 2남1녀의 막내인 그는 12년 전 서울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물건을 들다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가게 일을 돕기 위해 귀향했다가 공무원의 꿈을 접고 가업을 잇게 됐다. 5년 전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건강이상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몇 달 전에 허리수술을 했다. 소 씨는 “이제 아픈데도 많고 쉬고 싶다. 가게를 모두 아들에게 넘겨줄 계획이다”면서 “물려받을 아들이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장사가 잘돼야 할 텐데 갈수록 힘들어 걱정이다. 그래도 아들이 끊고 맺는 게 확실해 줄건 주고, 받을 건 받고 장사에 소질이 있어 다행이다”고 한다. “같이 장사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혼자서도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었다”는 규화씨는 “지금은 자동으로 일어나진다”며 장사를 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최규화 씨는 “어머니가 손도 크고 인심도 후해 단골손님이 많은 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게를 이용하는 백발의 어르신들도 계신다”면서 “전통시장 침체로 많은 어려움은 있지만 어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정직하고 성실하게 가업을 잇겠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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