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밤을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보내버린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왠지 억울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모양이다. 이용 가수는 시월이 오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잊혀진 계절’ 노래 하나로 일년 먹을 양식을 다 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남해 지족 삼거리 바닷가에 멋진 음악카페 [쇼펭 Chopin]이 있다. 문을 열면 언제나 쇼펭의 야상곡 [녹턴 Nocturne]이나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다. 여사장님은 한때 지방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직접 활동까지 했던 분인데 가을이 오면 음악회를 연다. 명화 [피아노]에 나오는 주인공 ‘에이다’를 보고 감동받아 자신도 바닷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몇 년 전 마침내 그랜드 피아노를 바닷가에 옮겨 놓고 관중들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 말이 쉽지 바닷가에 실제로 피아노를 옮기고 직접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 그리 쉽겠는가? 꿈을 실행에 옮긴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음악회는 그야말로 열광의 박수갈채를 받고 오늘에 주목해야 할 음악가가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피아노를 산에 올려다 놓고 산에서 피아노를 쳤다. 닫힌 공간에서의 음악은 한계가 있다. 자연 그대로의 음악을 열린 공간에서 들려주고 싶다는 그녀의 열정이 계속된 것이다. 이번 가을 소나타 음악회는 자신의 카페에서 첼로 3인조 음악가를 초청해 낭만 묻어나는 가을의 목소리를 한껏 들려주었다. 음악에 시낭송이 곁들이면 금상첨화라며 나에게 시낭송을 부탁한다.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해주겠다는데 이 영광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가을 낙엽이 뚝뚝 떨어지고 어둠의 죽방렴 바다와 지족교의 오색 등불들이 둥둥 떠가는 쇼펭 카페에 음악이 흐르고 시가 떠간다. -산굼부리 억새숲은 이별에 익숙하다. 이별 뒤엔 바보같이 눈물 따라다닌다. 이별이 슬픈 것은 그가 떠나서가 아니다. 바람이 불면 산굼부리 억새숲 전체가 일어서서 흐느끼듯 그를 위하여 불렀던 내 모든 기쁨의 노래 아우성쳐 나를 울리기 때문이다. 산굼부리 억새숲은 내가 불렀던 나의 노래들을 바람으로 간직하고 내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날이면 한 곡씩 풀어놓는다- 나는 시낭송을 하고 아내는 이 시를 노래로 불렀다.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그런데, 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이나요? 이런 이런, 난처한 질문이 들어왔다. 산굼부리는 제주도에 있는 오름인데요 화산웅덩이라는 뜻이에요. 억새가 산 전체를 덮고 있는 유명 관광지이지요. 제가 구경하고 내려오는데 억새숲 속에서 신혼의 아리따운 여자가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어요. 아마 신랑이 이별을 고하고 혼자만 떠나갔나 봐요. 억새들이 너무 슬퍼서 한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또 한번은 제가 출근하고 있었는데 신제주 호텔 앞에 신혼여행 온 너무나 예쁜 여자가 아침에 폭우를 그대로 다 맞으며 대성통곡하고 있었어요. 호텔의 억새들이 한없이 흐느끼며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나는 제주의 억새들을 바라보면 반가워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이별의 손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시월의 마지막 밤이 왔다. 억새꽃 계절이 왔다. 산천 전체가 억새꽃으로 흔들리고 있다. 황매산의 억새꽃 숲으로 달려가야겠다. 억새가 햇살에 한무더기씩 눈부시게 흔들리는 지리산 둘레길로 달려가야겠다. 이 가을 억새는 숲 전체로 일어나 나를 반겨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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